'9·11테러 경고' 부시 묵살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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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워싱턴=이효준 특파원, 김준술 기자] 9·11테러 이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테러관련 정보보고를 받았을 뿐 아니라 백악관 대책 논의를 주도했다는 사실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또 그동안 대테러전 공조를 펼쳤던 미 정치권에도 균열현상이 시작되고 있다.

◇추가 폭로=워싱턴 포스트는 "부시 대통령이 중앙정보국(CIA)의 사전보고를 받기 전인 지난해 7월 5일 백악관은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 10여개 관련기관과 긴급 대책회의를 했다"고 17일 보도했다.

참석한 기관은 연방항공청·연방수사국(FBI)·해안경비대·비밀경호국·이민귀화국(INS) 등 테러담당 기관들이다. 이 자리에서 리처드 클라크 사이버 안보담당 대통령 특별보좌관은 "미국에서 깜짝 놀랄 일이 곧 발생한다"고 긴급 경고를 발했다.이에 따라 이후 미 정부는 최고의 대응태세에 돌입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텍사스 크로퍼드 별장에서 CIA로부터 보고를 받은 시점인 지난해 8월 6일부터는 경계가 풀리기 시작했다.

이와 별도로 CIA는 지난해 6월 28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게 "알 카에다의 중대한 공격이 수주 내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했다. 이 정보가 즉각 부시 대통령에게 보고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8월 6일 보고를 받기까지 두달 가까이 정보 공백상태에 있던 셈이다.

이에 앞서 백악관 등이 공개한 사전 경고의 내용은 ▶빈 라덴 조직이 미여객기를 납치하려 한다(CIA, 지난해 8월)▶아랍인들이 미국 내 비행학교에서 교육받으려 한다(FBI, 지난해 7월)▶알 카에다 조직원인 자카리아스 무사위 등이 비행훈련을 받으려 한다(무사위는 이후 체포)▶중동인이 비행기로 뉴욕 건물에 돌진할 우려가 있다는 1995년 필리핀 경찰의 이첩 정보 등이다. 요컨대 이후 벌어질 9·11테러의 시나리오가 사전에 확보돼 있었다는 의미다.

◇깨지는 정치권 테러 공조=미 민주당은 처음엔 "당시 부시 대통령이 무슨 보고를 받았고, 정부는 어떤 대응을 했느냐"고 비판하는 정도였지만 하루 만에 공세의 수위를 크게 높였다.

뉴욕 타임스는 17일 "민주당은 지난 수개월동안 유지돼 왔던 대테러전 전면 지지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일부 공화당의원과 함께 테러 전후 상황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비판의 대열엔 9·11테러 이후 '애국적 보도자세'를 보였던 미국 주요 언론과 테러 희생자의 유족들도 가세하고 있다. 모두 초점은 부시 대통령이 테러 가능성을 무시해 예방에 실패하지 않았느냐는 것과 그동안 왜 이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한편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16일 "구체적 내용이 없는 막연한 정보를 갖고 미국 항공망을 마비시킬 수는 없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이 역시 의회로부터 "이 정도 내용만으로 빈 라덴을 용의자로 지목했느냐"는 반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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