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손님 10만명 기대했는데… 중국 관광객 발길'멈칫'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중국 월드컵 관광객 4천5백명을 유치할 것으로 예상하고 보름 동안 객실 2만5천개를 확보해 놓은 B여행사는 요즘 빈 방을 채우기 위해 정신이 없다. 지난해 말부터 방값 6억원을 선불로 지급했으나 지금까지 절반밖에 예약을 확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여행사 관계자는 "어렵사리 구한 월드컵 입장권 4천장을 다 팔지도 못했는데 중국 현지 여행사들이 '더 이상 관광객 모집이 힘들다'고 통보해와 걱정"이라고 말했다. 여행사뿐만 아니라 숙박업계도 비상이다.

얼마 전까지 서울·경기·인천의 웬만한 호텔들은 "예약하려면 선불을 달라"고 콧대를 세웠다. 하지만 시설·입지가 좋은 곳을 제외하고 상당수 호텔들은 여행사에 "관광객을 유치해 달라"고 사정하는 처지가 됐다.

K여행사 관계자는 "하루 20만원 하던 경기와 서울 변두리 지역 호텔의 숙박비가 최근 8만원까지 떨어졌다"고 소개했다. 월드컵 기간에 10만명 가량 한국을 찾을 것으로 기대했던 치우미(蹴迷·중국 축구팬)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월드컵 개막까지 보름도 남지 않았는데 확정된 예약자가 1만여명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관광공사는 "6월 중 8만~9만명은 오지 않겠느냐"며 여유를 부리지만, 여행업계는 "많아야 5만명, 잘못하면 3만명 선에 그칠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대한항공 등 국내 항공업계는 90여편의 특별기를 준비했으나 예약이 많지 않아 아직 정확한 운항조차 확정하지 못했다.

◇왜 안 오나=중국 관광객의 발목을 잡는 것은 첫째로 중국의 까다로운 여행허가 절차다.

중국 공안당국은 월드컵 관광객의 불법체류 가능성에 대비해 이달 들어 1인당 5백만원의 출국보증금을 받도록 중국 여행사에 지시했다.

특히 중국동포에게는 1천만원의 보증금이나 10만위안(1천5백만원) 이상의 잔고가 있는 통장 사본을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의 엄격한 출입국 관리 때문에 국내 여행사들이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이지 않은 것도 원인이 됐다.

법무부는 여행사에 '관광 후 책임지고 관광객을 내보내겠다'는 출국보장각서를 받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예정대로 출국하지 않으면 1인당 50만원의 과태료를 여행사에 부과할 방침이다. 이밖에 평소 4박5일 일정에 1인당 40만~50만원이던 여행경비가 월드컵 기간 2박3일에 최고 1백50만원까지 오른 것도 예약자가 줄어든 이유 중 하나다.

◇문제점=우리 정부는 16일 ▶입장권을 실명으로 구입했거나 비실명이라도 국내기업의 초청장을 제시한 중국인에게 비자를 발급해 주고▶홍콩 스타TV 광고 등을 통해 홍보를 강화하는 등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여행업계에서는 이런 조치들이 너무 늦게 나왔고, 큰 효과도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내일관광여행사 여지언(呂枝彦)부장은 "한국·중국 정부의 너무 엄격한 출입국 관리와 비싼 여행경비 때문에 중국인들이 '차라리 일제 대형TV를 사서 집에서 관람하겠다'고까지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창우·강주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