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기회복 주춤 숨고르기냐 후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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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잘나가던 일본 경제가 생산과 소비가 주춤하는 등 이상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일시적인 숨고르기에 불과할 뿐"이라며 내년도 경제운용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잠시 감속(減速)하고 있지만 내년 중반부터 빠른 회복세를 되찾을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내년에는 경기후퇴 국면에 접어들 공산이 크다"는 부정적 의견이 나오고 있다.

◆경제지표상으론 '빨간 불'=최근 발표된 대형 제조업체들의 단기 경기관측 조사 결과 경기신뢰도가 19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락했다. 3개월 뒤의 전망에 대해 대기업.중소기업 모두 "현재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체감경기가 좋으냐 나쁘냐를 나타내는 경기동향지수도 지난 10월까지 3개월 연속 50%를 밑돌았다. 1995년 이후 9년 만이다. 경기동향지수가 3개월 연속 50% 미만이면 '경기하강'에 접어들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3개월 연속 50% 미만으로 떨어졌지만 경기가 하강하지 않은 적은 80년 이후 단 두 차례뿐이었다.

이처럼 일본의 경기회복이 주춤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생산 부진이다. 경제산업성이 발표하는 생산지수는 지난 9월 전월에 비해 4% 줄어든 데 이어 지난 10월에도 8.2% 줄었다. 디지털 가전제품 등이 생각만큼 팔리지 않아 재고가 쌓이고 있기 때문이다. 유가 급등으로 미국 등 해외 수요가 줄어들면서 수출 증가세가 꺾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 도쿄(東京)지역 백화점 매출액이 지난해 동월 대비 5.9% 감소하는 등 소비도 얼어붙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지난 20일 경기에 대한 '기조판단'을 "회복이 완만해지고 있다"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11월 "일부에서 약한 움직임이 보이나 그래도 회복세는 이어지고 있다"는 표현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기조판단을 2개월 연속 하향 조정한 것은 2002년 11월 이후 2년 만이다.

◆민간.정부 전망 엇갈려=다케나카 헤이조(竹中平藏)경제재정상은 20일 "감속하고 있지만 착실한 회복이 계속될 것이라는 견해에는 변함이 없다"며 일각의 '경기하강론'을 일축했다. 그러면서 내년 실질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6%로 확정했다. 29개 민간기관의 평균 예측치인 1.3%보다 3%포인트 높은 수준이다. 다케나카 경제재정상은 "2004년에 비해 내년도 성장률은 다소 떨어지겠지만 기업들의 수익이 크게 늘고 있어 민간을 중심으로 한 경기회복은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낙관론의 배경에는 90년대에 있었던 두 차례의 '반짝 회복'때와 달리 부실채권 문제 등 금융권의 불안 요인이 거의 사라졌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또 기업들이 '잃어버린 10년'의 교훈을 통해 과잉 생산.투자에 신중을 기하고 있어 현 재고 조정도 내년 3월께면 마무리될 것이란 분석이다.

그러나 다이이치(第一)생명경제연구소 시마미네 요시야스(島峰義淸)이코노미스트는 "정부의 전망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며 "내년에는 세제 개편으로 개인의 세 부담이 늘어나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닛세이기초연구소 사이토 타로(齋藤太郞)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일본 경기는 '경기 감속'과 '경기 하강'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라고 말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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