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표 '여야 협상' 깔끔한 데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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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1일 여야 협상 데뷔전을 치렀다. 4인회담은 박 대표에겐 실질적인 첫 협상 무대였다. 17대 총선이 끝난 뒤인 지난 5월 당시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회담을 열고 '새 정치 협약'을 발표하긴 했지만 이는 사전에 안건이 합의된 회담이었다.

그러나 이날 회담은 성격이 달랐다. 안건을 둘러싼 여야 간 이견이 상당히 컸다. 무엇보다 국가보안법 문제에 대한 박근혜 대표의 태도가 강경했다. 열린우리당에서 "정국 정상화의 걸림돌이 박 대표"란 푸념이 나올 정도였다. 따라서 이날 회담의 열쇠는 박 대표에게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막상 회담이 끝난 뒤 박 대표에 대한 평가는 높았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박 대표가 그간 회담에 나오지 않다 이런 합의문을 이끌어내는 데 참여한 것을 대단히 높이 평가한다"고 칭찬했다. 여야 협상에서 잔뼈가 굵은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도 "박 대표가 예전에 이런 회담을 안 해 봤을 텐데 상당히 유연성을 갖고 결단 내릴 것은 잘 내리더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이날 회담의 세세한 부분까지도 직접 챙겨가며 준비했다. 예정보다 한 시간 늦게 시작된 오후 회담에서 박 대표는 기금법안과 관련된 내용을 수첩에 메모해 와 꼼꼼히 필기를 해 가며 자신의 주장을 폈다. 굳게 닫힌 회담장의 문 틈새로 간간이 박 대표의 열기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여권에서 4인회담을 제의했을 때 박 대표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당 안팎에선 박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과의 '영수 회담'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일 마라톤 당내 회의에서 회담을 전격 수용했다. 이규택 최고위원은 "국민을 생각해 통 큰 정치를 하라"고 박 대표를 설득했다고 한다. 색다른 해석도 있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김 원내대표가 여러 번 여야 협상에 나섰으면서도 별 성과가 없어 박 대표가 나서게 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박 대표는 앞으로 상임위에서 해결이 안 된 안건들이 4인회담에 넘어올 경우 이를 직접 해결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됐다.

이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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