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얼굴 외교' 日 망신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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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국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 탈북자 연행 사건으로 일본 외교가 국제적 망신을 당할 위기에 놓였다.

사건을 촬영한 비디오가 공개됨으로써 영사관의 미심쩍은 대응자세가 낱낱이 드러난 데다 잦은 말 바꾸기와 중국의 반론 등으로 정직성·도덕성마저 의심받는 지경이 됐다. 일본 여론도 어린이를 포함한 탈북자들을 마구잡이로 연행한 행위를 방치하거나 도와준 듯한 일본 외교관들을 매섭게 꾸짖는 분위기다.

일본 외무성은 당초 "중국 경찰이 동의없이 총영사관에 들어와 두명을 강제로 연행했으며, 이는 외교공관 무단침입을 금지한 빈 협약 위반"이라며 중국을 몰아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같은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11일 "경찰은 동의를 받고 영사관에 들어갔고,다섯명을 연행할 때는 일본 영사가 휴대전화로 상사와 통화한 뒤 동의해 주었다"고 반박했다.

일본 언론들은 12일 ▶총영사관 직원이 영사관 부지에 떨어진 중국 경찰의 모자를 주워 건네주었고▶탈북자 두명이 총영사관 내에서 10여분간 방치돼 있었던 사실 등을 들어 영사관 측이 연행을 '방조'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외무성은 지난 10일엔 "총영사관에 들어간 탈북자는 두명"이라는 보고자료를 자민당에 제출했다가 그 직후 당시 상황을 찍은 비디오를 시청한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관방장관에게서 "다섯명 전원이 총영사관 내에 들어가지 않았느냐"고 질책당하기도 했다.

지지(時事)통신은 12일 "선양 일본총영사관 출입구·사증신청장소 등에 방범 비디오카메라가 설치돼 있으나 당시 상황이 전혀 녹화돼 있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비디오카메라가 고장났을 수도 있지만 일부에선 총영사관이 진상을 은폐하려고 폐기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비난여론을 업은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전 자민당 정조회장은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외상이 사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일본 정부의 '난민 기피증'도 도마에 올랐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될 당시 난민(보트 피플)을 단 한명도 받아들이지 않을 정도로 소극적인 일본 정부의 폐쇄성이 선양 총영사관의 대응자세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에 난민 관련 규정이 생긴 82년 이후 난민신청을 한 외국인 2천1백79명 가운데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12%인 2백16명에 불과하다. 같은 선진국인 미국(38%)·영국(25%) 등에 비하면 턱없이 낮다.

나카지마 미네오(中嶋嶺雄)전 도쿄외국어대 총장은 "이번 일을 계기로 일본 정부도 난민 문제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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