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호 기자의 e-스토리] 휴대전화 복귀 7개월 SK텔레시스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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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삼성전자와 애플이 지난 주 스마트폰 야심작을 거의 비슷한 시점에 국내외에서 출시하자 서울 을지로 2가의 SK텔레시스 사무실에선 한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수 위인 ‘갤럭시S’와 ‘아이폰4’의 한판 승부가 부러워서다. SK텔레시스는 지난해 말 단말기 사업에 뛰어든 뒤 ‘W’ 브랜드의 두 모델을 출시했다. 지난달 초엔 피처폰(일반 휴대전화)으로 국내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단말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수퍼스타 가수 비를 모델로 내세운 TV광고 덕분에 ‘비폰’(사진)이란 애칭까지 얻었다. 그러나 등장 두 달 만에 삼성과 애플이라는 거대 기업의 그림자에 가려 시야에서 사라질 판이다.

SK텔레시스는 경쟁이 치열한 단말기 사업에 왜 뛰어들고, 왜 피처폰으로 승부를 걸었을까.

이 회사는 SK 창업자인 고 최종건 회장의 차남인 최신원 SKC 회장이 대주주로, 지난해 11월 W폰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SK텔레콤이 2005년 SK텔레텍을 팬택에 넘긴 지 4년 만에 범SK가(家)가 단말기 제조시장에 복귀하는 의미가 있었다. 든든한 우군(SK텔레콤)과 기존 주력사업(통신장비 개발)으로 쌓은 노하우가 있어 자신감도 있었다. 정체 상태에 빠진 장비 시장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 단말기 사업을 택한 계산도 있었다.

그러나 W폰의 성적표는 초라했다. 지난달까지 일곱 달간 10만 대 정도 팔렸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자위하면서 지난달 3일 두 번째 W폰을 내놨다. 비까지 동원한 ‘올인’전략으로 브랜드 인지도도 한껏 높였다. 클래식한 정장 차림으로 강인한 멋을 뿜어내는 비가 호주머니에서 ‘핑크색 소녀폰’(경쟁사 제품 이미지)을 꺼내다가 ‘메털실버 남성폰’(W폰)으로 바꾸는 광고 컨셉트는 높은 인지도를 기록했다. 이런 총력전 덕분에 새 W폰은 하루 평균 1500대 정도 팔릴 정도로 선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갤럭시S와 아이폰4가 요란한 예고에 이어 속속 출시돼 바람몰이를 하게 되면 ‘비폰’은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힘겹게 될 판이다. SK텔레시스는 9월 말 W 브랜드로는 첫 스마트폰을 내놓을 계획이다.

삼성·애플의 격전이 식을 때쯤 그 틈새를 노리겠다는 전략도 있다. 익명을 원한 이 회사 관계자는 “첫 W폰으로 좋은 경험한 셈 치고, 비폰으로 가능성을 읽었다”며 “스마트폰은 크게 보면 국내 업체 모두 비슷한 출발선상”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스마트폰 춘추전국시대의 관전 포인트에 ‘W폰’도 한몫할 전망이다.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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