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세 인상’ 잘못 꺼냈나 … 간 나오토 지지율 미끄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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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나오토(菅直人·사진) 총리가 일본에서 ‘금단의 정치 이슈’인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 문제를 거론했다가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지율이 급락하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지난 8일 간 내각 출범 당시 64%에 달했던 지지율은 27일에는 50%로 떨어졌다. 20일도 채 안 돼 14%포인트나 빠진 것이다. 다음 달 11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 판세도 집권 민주당에 불리해지고 있다.

간 총리는 17일 민주당의 참의원 선거 공약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소비세 인상 논의를 공약으로 명시하겠다”고 밝혔다. 제1야당인 자민당도 소비세 인상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집권 여당이 이 문제를 들고 나와도 큰 역풍은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사민당·국민신당 등 군소 정당들이 정치 이슈화하면서 간 총리 내각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내각 출범 이후 지지율(요미우리 보도)은 둘째 주 59%→셋째 주 55%→넷째 주 50%로 뚝뚝 떨어졌다. 이 추세대로 가면 40%대 진입도 시간 문제로 보인다. 넷째 주 응답자의 88%는 간 총리가 제안한 소비세 인상 논의에 대해 ‘그렇게 할 이유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고 응답했다.


간 총리는 지지율이 급락하자 “소비세를 즉시 인상하자는 게 아니라 일단 논의해 보자는 것”이라며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야당은 지역구 유세와 TV 정책토론에서 소비세 논의를 집중 공격하고 나섰다. 민주당과의 연립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국민신당 가메이 시즈카(龜井靜香) 대표는 “소비세 인상이 단행되면 연정을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문제로 연정에서 발을 뺀 사민당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대표도 “국민 부담 증가는 단호히 거부한다”고 말했다.

간 총리가 소비세 인상을 거론한 것은 재정이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경기 부양을 위해 국채와 지방채를 남발, 국가 부채가 올 3월 사상 처음으로 1000조 엔을 넘어섰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은 200%를 돌파했다. IMF는 “내년부터 책임 있는 재정을 운용하라”며 “소비세를 현행 5%에서 10%로 올리라”고 권고했다.

일본 국민은 이런 총론에는 찬성하지만 막상 세금을 올리자는 각론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간 총리는 소비세 인상을 단행하게 되면 중의원 해산, 총선 실시를 통해 다시 신임을 묻겠다고 했지만 여론의 반응은 싸늘하다. 전체 242석 가운데 절반(121석)을 교체하는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목표 의석수(54석)도 낙관할 수 없게 됐다고 요미우리신문은 전했다.

과거 자민당 정부 시절에도 소비세 인상 논의가 나올 때마다 집권 여당은 큰 타격을 받았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는 1997년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올린 다음 해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 퇴진했다. 이런 과거 때문에 소비세 논의는 ‘총리들의 무덤’으로 불리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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