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값 상승분을 월세로 지급 … 강남권서 ‘보증부 월세’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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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 사는 김모(41)씨는 지난 4월 전세 만기가 다가오자 오른 전셋값을 월세로 지급하는 ‘보증부 월세’로 재계약했다. 인근의 전셋값이 모두 올라 이사할 집이 마땅치 않은 데다 자녀의 전학이 싫어 같은 아파트에 눌러앉기로 했다. 기존의 전셋값 2억5000만원(전용 84㎡형) 외에 오른 1억원을 연 8%의 이자율을 적용해 매달 66만원씩 내고 있다.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 등 전셋값이 많이 오른 곳에는 김씨 같은 사람이 많이 늘었다. 송파구 잠실동 건국공인 조명제 사장은 “2년 전 새 아파트 입주 물량이 쏟아져 싼값에 세를 들었다가 전셋값이 급등하자 세입자들이 다른 동네로 이사하거나 보증부 월세로 돌리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 일대에서 2008년 입주한 잠실 리센츠와 엘스 아파트 단지의 전셋값은 입주 2년 만에 1억~2억원(전용 85㎡ 이하) 정도 올랐다. 잠실동 박준공인 박준 사장은 “세입자들이 계약을 연장하면서 보증부 월세로 돌린 경우가 10~20% 정도 된다”고 말했다. 오른 금액의 절반 정도를 보증금으로 내고 나머지를 월세로 돌리거나 김씨처럼 상승분 전액을 월세로 낸다.

보증부 월세 전환이 늘어난 것은 급격히 오른 전셋값 때문이지만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월세를 선호하는 집주인이 많아진 것도 주요 이유다. 서울 양천구 목동에 사는 정모(45)씨는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마땅히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묻어뒀다”며 “그러나 수익률이 자꾸 떨어지는 상황에서 임대한 집의 전세 상승분을 월세로 돌렸다”고 말했다. 전세 보증금을 금융권에 예치하면 받을 수 있는 금리는 연 3~4%(이하 세전)지만 월세 수익률은 연 8~9%에 달한다.

재개발사업이 많아 다가구·빌라가 줄어든 강북권에선 보증부 월세로 계약하거나 순수 월세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강북구 미아동 서울153공인 정창길 사장은 “최근 경기가 좋지 않아 생활비로 쓰기 위해 전세 보증금을 빼 월세로 전환하는 생계형 월세도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정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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