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명 다 끌려나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자유의 땅으로 들어가려는 자와 이를 막는 자의 처절한 몸싸움.

장길수군 친척 5명이 지난 8일 중국 선양(瀋陽)의 일본 총영사관에 진입하려다 중국 경찰의 제지로 실패한 장면을 생생히 담은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됐다.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탈북자 5명이 모두 총영사관 구내 진입에 성공했으나 중국 경찰이 뒤쫓아 들어가 완력으로 끌어낸 사실이 이 화면으로 확인됐다.

사건 당시 영사관 직원으로 보이는 남자 서너명이 처절한 몸싸움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중국 경찰의 탈북자 강제연행을 제지하지 않았다. 10일 국내 TV에 방영된 이 비디오는 탈북자 지원단체의 한 관계자가 사건현장인 일본 총영사관 건너편의 건물 안에서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들이 거사시간으로 결정한 지난 8일 오후 2시, 일본 총영사관 철문은 사람 1명이 들어갈 만큼의 틈을 둔 채 열려 있었다.

중국 경찰이 정문 앞에서 경비 중이었지만 갑작스레 나타난 김광철씨와 성국씨 형제는 눈깜짝할 새 이들을 따돌리고 총영사관 내로 뛰어들었다. 뒤이어 광철씨의 어머니 정경숙씨와 부인 이성희씨도 영사관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李씨는 두살배기 딸 한미양을 등에 업은 채였다.

자유의 땅을 찾아 목숨을 건 탈북자 5명의 모험이 성공하는 듯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곧 반전되고 말았다. 방심한 사이 정문을 돌파당한 중국 경찰 세명이 이내 영사관 내로 뛰어들어와 李씨와 정씨의 허리춤을 잡았다.

지난 3월 탈북자 25명의 스페인 대사관 진입 때 중국 경찰이 쫓아들어가지 못하고 정문 밖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두 여인의 저항도 필사적이었다. 李씨는 철문을 붙들고 버티며 "사람 살려"라고 절규했다. 땅에 쓰러진 채 정문 밖으로 끌려나온 정씨는 엄마의 등에서 굴러떨어진 한미양만이라도 영사관 안으로 되밀어 넣으려 안간힘을 다했다. 한미양은 울음을 터뜨리며 철문 밖에서 벌어진 할머니와 엄마의 처절한 사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안타까운 시간 2분이 흘렀다. 오랜 도피생활에 지친 탈북자들의 기력이 건장한 중국 경찰의 완력을 당해낼 순 없었다. 몸싸움이 끝나갈 무렵 총영사관 직원 서너명이 정문쪽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이들은 몇발짝 물러선 채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한 직원은 몸싸움을 벌이느라 땅에 떨어진 중국 경찰의 모자를 주워 건네주는 '친절'을 과시하기도 했다.

예영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