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삶과 문화

들을 줄 아는 지도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4면

큰일 하나 추진하려면 행정절차상 넘어야 할 산이 한 둘이 아니다. 틀에 박힌 규정만 내세우며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담당 직원들과 대화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절망감을 느낀다고들 한다. 그럴 때면 민초들은 높은 관리 나리라도 만나서 가슴에 품은 뜻을 호소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높은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다. 물론 선거철에는 예외겠지만 말이다.

어떤 때는 이런 생각이 든다. 지도자들은 누구를 만나 무슨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할까? 민초들의 가슴에 깔린 그 소리가 아닌가? 말이야 쉽지만 그 많은 사람의 자기중심적 욕구를 다 듣고 있으려면 오죽 힘들고 피곤하겠는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또 한편으론 그래도 그가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듣는 것을 포기하는 것은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내겐 그리워지는 한 사람이 있다. 여러 해 전에 중요한 책임을 맡았던 사람이다. 확실한 것은 그의 사무실 문턱은 높지 않아 비교적 만남이 자유로웠다는 점이다. 그리고 찾아온 사람을 마치 오래 사귄 친구를 대하듯 진실되게 맞아 주었다. 대부분의 지도자는 어떤 제안을 들으면 "한 번 연구해 보겠다"고 하며 능구렁이처럼 난처한 상황을 빠져나가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그는 달랐다. "제가 무엇을 도와드릴 수 있습니까?"하며 겸허히 묻는 것이었다. 그의 판단은 신속하고 예리했다. 그의 모습은 내게 감동을 주었다. 민초들은 그들의 말을 진솔하게 들어주었던 지도자를 오래 기억하고 그를 존경하게 된다.

요즘은 그리워지는 지도자가 없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무슨 의미일까? 남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지도자가 없다는 말이 아닌지. 대부분의 지도자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경향이 있다. 화려한 웅변가는 많이 있다.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펴는 지도자도 있다. 그러나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 지도자는 희귀하다. 어떤 지도자는 앞에 나가 말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그는 다른 이들이 그의 말을 듣고 앉아 있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지 못한다. 측은한 일이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종이에 써 내라고도 한다. 얼핏 보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그것도 듣는 자의 자세가 아닐 수 있다. 혹시라도 닫힌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지도자의 오만으로 비춰질까 염려된다. 진짜 소리는 그렇게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할 말 없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그래도 한마디 해 달라"고 부탁하고 가슴 밑바닥에 있는 그 말을 듣고 느낄 줄 아는 지도자가 진정한 지도자다.

큰 소리는 대개 중요한 소리가 아니다. 잡음이거나 소음인 경우가 많다. 중요한 소리는 미세한 소리, 작은 소리다. 더 중요한 소리는 침묵으로 가슴 깊게 간직된 소리다. 세차게 외쳐대는 소리는 지극히 원초적인 자기중심의 소리인 반면 진정한 소리는 다수의 가슴 밑바닥에 깔려있는 그 소리, 바로 침묵의 소리다. 지도자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지도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기보다 들을 줄 아는 사람이다.

만남은 기회다. 유능한 지도자는 만남을 기회로 삼을 수 있지만 무능한 지도자는 만남을 두려워한다. 사람은 가슴 가까이 다가갈 때만이 서로의 진실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번의 만남의 느낌은 세월이 흘러가도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 있게 된다.

지난 총선 때 나는 쌈짓돈 100만원을 꺼내 난생 처음 정치자금이란 것을 내 보았다. 오래 전 내가 그렇게 힘들었을 때 내 가슴속의 말을 진정으로 들어주었던, 지금은 외로운 그 정치인에게 가난한 민초의 고마운 마음을 보낸 것이다.

들을 줄 아는 지도자가 그립다.

한상경 삼육대 원예학과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