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쇠뿔 고치려다 소 잡지 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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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른바 4대 쟁점 법안 때문에 국회가 마비 상태에 빠져 있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일부의 잘못을 들어 전체를 규제하려는 데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획일주의 대신에 선별주의, 전체부정 대신에 개량주의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여당은 국가보안법이 지난날 인권 유린에 악용되었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법이 북한 정권의 적화통일 전략을 거부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그 목적에 유효했다고 보는 국민이 대다수다. 관료들의 업무 수행 과정에서 인권 유린 사례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부의 잘못이 있다 하여 보안법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쇠뿔에 다쳤다 하여 소를 죽이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북한 핵 문제가 미해결 상태에 있고 북한 정권이 사상전을 강화하고 있으며, 북의 공작원 출입이 거의 개방돼 있는 상태에서, 보안법 폐지가 그렇게 시급한 문제인가. 하물며 정치판을 뒤엎고 민생문제 해결을 뒤로 미룰 만큼 절박한 문제인가, 국민 대다수가 이렇게 반문하고 있다는 것이 여론조사 결과에 나타나 있다. 그렇다면 인권 유린의 소지가 있는 조항을 수정하는 선에서 여야가 합의하는 것이 정치 지도자들의 도량 있는 해법이다.

자유 민주의 나라에서는 민간이 사재를 던져 학교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건학(建學)이념과 방법에 따라 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그러한 원리에 따라 수많은 사학이 생겨나 국민 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왔고, 질 좋은 중.고등학교와 대학들은 공립보다 사학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그런 좋은 사학에까지 정부가 이사진 구성이나 학내 인사에 간섭해야 하는지 자유 민주의 원리로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최근 일본에서는 공립학교 운영에 민간인 참여를 확대하고, 기업이 자가용으로 대학과 전문 대학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바 있는데, 우리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일부 나쁜 재단은 가차없이 제재하되 선량한 다수는 자유화하는 선별주의가 바람직한 해법이다.

언론개혁에 관한 법률도 언론의 자유와 상충되는 점이 있다. 신문사의 독과점 행태를 시정하기 위해 1개 신문사 혹은 3개 신문사의 시장 점유율을 제한하겠다 하는데 무슨 방법으로 독자들의 신문 구독을 제한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신문은 다른 상품과는 전혀 다른 범주에 속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신문마다 사시(社是)가 있고 독자들은 신문의 색깔을 보고 구독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러한 신문의 발행 부수를 제한한다는 것은 독자들의 사상과 견해를 제한한다는 것과 다름이 없다. 본시 사상이나 견해의 '독과점'이란 있을 수 없고 규제의 대상이 될 수도 없다.

부분적 개량이 아니라 총체적 개혁을 주장한다면 개혁의 이념적 지향을 묻지 않을 수 없다. 여당이 말하는 대로 4대 법안이 민주화를 위한 것이라면 법안의 내용은 자유 민주의 원리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여당이 자유 민주를 달리 생각하고 있다면 사회통합과 안정, 그리고 경제 발전을 약속하는 대안의 가치체계가 무엇인지를 명백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금의 끝없는 혼선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남덕우 전 국무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