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사회민주주의는 죽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프랑스의 세계적 사회학자인 알랭 투렌(77·사진)교수는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사망했으며 이번 프랑스 대선이 그 증거"라고 주장했다.

68세대의 지도적 사상가로 전세계 좌파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투렌 교수는 7일 독일의 디벨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고 다음달 프랑스 총선에서도 우파가 압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프랑스 극우파들의 앞날은 장밋빛인가.

"이번 프랑스 대선에 나타난 현상은 르펜의 승리가 아니라 사회주의자들의 추락이다. 정치제도와 정치적 책임의 표류 때문이다. 대부분의 국민은 르펜에게 표를 던진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분노와 근심을 표출했다."

-좌파가 다시 집권하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하나.

"교수·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상층부와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 하층부 간의 대화가 단절됐다. 이런 현실에서 국가는 새로운 정치·제도적 해답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사회주의자들이 이를 해낼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과연 국가가 이 요구를 들어줄 수 있을까.

"사회민주주의 국가가 추구해 온 경제성장과 사회복지의 연계가 실종됐다. 자유주의자들은 사회적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고, 국가도 중산층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평등의 이념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이처럼 사회통합의 의무를 포기하자 극우파가 득세하게 된 것이다."

-시라크가 결선투표에서 좌파의 도움을 받았는데 앞으로의 전망은.

"좌파의 도움을 받은 시라크의 입지는 매우 약하다. 그러나 사회당이 움직이지 않고 계속 분열된다면 다음달 총선에서도 보수주의자와 시라크측이 승리할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아 시라크가 압도적으로 승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프랑스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위기를 탈출할 방법은.

"없다. 지난 반세기를 지켜온 유럽 사회민주주의는 이미 죽었다. 우리는 지금 영국·독일·스페인·포르투갈 등 유럽 도처에서 사회민주주의가 마지막으로 숨쉬는 모습을 보고 있다. 낡은 국가 개입주의를 옹호할 필요는 없지만 프랑스의 빈곤층은 20%나 된다. 따라서 순수 자유주의 체제는 받아들일 수 없다. 사회정의를 실현할 새로운 형태의 국가 경제체제를 모색할 때다."

베를린=유재식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