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탈 스포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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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스코틀랜드 남동부 해안 골프장은 '링크스(Links)'라고 한다. 바다와 육지를 '연결(Link)'하는 모래 반, 잔디 반의 언덕을 말한다. 이곳에서 목동들이 양떼를 몰던 막대기로 돌멩이를 쳐 토끼굴 구멍에 넣는 놀이를 시작한 것은 6백년 전.

골프 발상지를 한반도로 옮기자면 함경남도 원산쯤이다. 공교롭게도 원산은 한반도에 골프가 처음으로 상륙한 곳이다. 19세기 말 막 개항한 원산항의 관세 업무를 자문하던 영국인 고문들이 명사십리가 내려다보이는 링크스에 전용 골프장(6홀)을 만들었다. 일반인들을 위한 최초의 골프장은 1919년 지금의 효창공원 자리에 만들어진 '효창원 골프코스'(9홀)다. 일제 조선철도국이 직영하는 호텔의 부대시설이었는데 주로 일본인들이 많이 이용했다. 우리나라 골퍼(Golfer)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초의 한국인 골퍼는 4·19 직후 재무장관을 지냈던 고 윤호병씨. 그가 처음 등장한 골프장은 효창원에서 청량리로 옮겨 24년 개장한 '청량리 골프코스'다. 최초의 18홀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좁고 짧아(3천9백42야드) "아이언(Iron)만으로 플레이했다"고 한다.

진짜 골프장 규격을 갖춘 최초의 골프장은 29년 문을 연 '군자리 골프코스'(18홀·6천1백60야드). 왕실의 말을 사육하던 곳인데 골퍼였던 영친왕(英親王·고종의 셋째 아들)이 땅을 내놓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농지로 바뀌었다가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이 외국인용 골프장 건립을 지시해 복구됐다. 한국골프의 요람이다. 53년 우리나라 최초의 골프클럽인 '서울 칸트리 구락부'가 만들어지고, 최초의 아마추어 골프대회(54년)와 프로 선수권대회(58년)가 열린 곳도 이곳이다. 72년 어린이대공원으로 바뀌었다.

길게는 1백년, 짧게는 50년의 역사. 최경주 선수의 미국 PGA 우승은 또 다른 급성장의 신화다. '멘탈(Mental·정신적) 스포츠'라 불리는 골프에서 승리는 자신감(Confidence)에서 나온다고 한다. 崔선수는 미국으로 떠나며 "3년 뒤를 기대하라"던 약속을 지켰다. 검은 얼굴, 날카로운 눈매, 느린 듯한 몸동작이 모두 확신에 차 있어 보인다. 그래서 골프를 잘 몰라도 그를 보면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오병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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