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북 ‘노동당 대표자회’ 44년 만에 개최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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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오는 9월 조선노동당(총비서 김정일) 대표자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26일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이 조선노동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를 위한 대표자회를 9월 상순에 소집할 것을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23일자 결정서를 인용해 “주체혁명 위업, 사회주의 강성대국 건설 위업 수행에서 결정적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우리 당과 혁명 발전의 새로운 요구를 반영한 것”이라며 당 대표자회 개최 배경을 전했다.

북한이 당 대표자회를 개최하는 것은 44년 만이다. 1993년 12월 노동당 중앙위원회 6기 21차 전원회의를 끝으로 김일성 사망(94년 7월) 이후에는 제대로 된 노동당 행사가 한 차례도 없었다. 이에 따라 이번 당 대표자회에서 김정일 후계체제 문제를 비롯해 노동당 내 권력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이 나올지가 주목된다. 66년 10월 2차 당 대표자회 때는 당 중앙위원장제가 폐지되고 총비서제를 도입했다. 또 58년 3월 첫 대표자회 직후에는 종파 투쟁이 벌어져 김일성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 가해지는 등 대표자회는 북한 권력 내부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정부 당국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노동당 최고지도기관 선거’로 의제를 한정한 만큼 당 중앙위원회와 중앙검사위·중앙군사위에 대한 조각 차원의 인선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특히 당 중앙위 산하 정치국과 비서국 물갈이가 점쳐진다. 김일성 사후 노동당 원로세력 상당수가 사라졌지만 이에 대한 충원이나 조직 개편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내정된 셋째 아들 김정은을 옹립하는 결정이 이뤄질지도 관심거리다. 안찬일 미 버지니아대 초빙교수는 “당 대표자회 개최는 김정일의 건강이 여전히 좋지 않다는 방증”이라며 “후계체제 공고화를 위한 당내 기반 마련을 위해 대표자회 소집이 결정됐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원세훈 국정원장도 지난 24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김정은이 김정일 현장 방문 시 수시로 동행하며 정책 관여의 폭을 넓히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9월 대회 때 김정은 후계가 공식화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도 당내 직위 부여 등 10여 년의 황태자 수업을 거친 후 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후계자로 공식 부상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강성대국 진입의 해’로 공언한 2012년 7차 당대회를 열어 후계를 공식화할 것이란 얘기다.

선군정치로 불려온 김정일 체제의 비정상적 통치가 노동당 중심으로 정상화하는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7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당료인 매제 장성택을 국방위 부위원장으로 승진시킨 것은 군부의 영향력을 줄이려는 김정일의 포석”이라며 “권력 정비기(94~98년)와 권력 공고화기(98~2009년)를 거친 북한이 권력 안정기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 김정은 연구”=북한이 9월 노동당 대표자회의에서 김정은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공식화할 가능성이 있으며, 미국 행정부는 김정은의 리더십 스타일에 대해 집중 연구해 왔다고 미국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WP)가 27일 보도했다. 신문은 김정은의 스위스 유학 경험 등을 소개하며 “김정은은 폭력적이고 상당히 자학적인 경향을 갖고 있는, 매우 문제가 많은 인물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연구 결과를 전했다. 신문은 또 “중국이 5월 방중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세습 권력 이양에 대해 이견을 제시했고, 이것이 양측의 갈등을 낳았을 수 있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이영종 기자

◆당 대표자회=노동당의 최고지도기관인 당 대회와 당 대회 사이에 필요에 따라 당 중앙위원회가 소집하는 회의. 노동당 규약은 당의 노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의 긴급한 문제들을 토의·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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