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에 강도높은 자구노력 요구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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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더 이상 방치하다간 금융시장 전체가 불안해진다. 정부가 저축은행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대출에 구조조정기금을 투입하기로 한 이유다.

자산관리공사(캠코)는 2008년과 지난해 자체 자금으로 저축은행의 부실 PF 대출 1조7000억원을 매입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부동산 경기가 예상보다 더 나빠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말 현재 저축은행의 PF 대출은 12조4942억원이다. 금융감독원의 PF 사업장 실태 조사 결과 사업 추진이 어려운 ‘악화 우려 사업장’의 대출은 전체의 31.3%인 3조9089억원으로 집계됐다. 또 사업성이 있지만 일부 어려움이 있는 ‘보통 사업장’의 대출은 전체의 42.2%인 5조2695억원이었다.

정부는 부실 PF 대출을 매각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63개 저축은행으로부터 3조8000억원어치의 PF 대출을 사들인다. 이 중 2조8000억원은 ‘악화 우려 사업장’의 대출이다. 나머지 1조원은 ‘보통 사업장’으로 분류됐지만 해당 저축은행이 부실 우려가 있다고 본 것이다.

캠코는 구조조정기금 등 2조8000억원을 투입해 채권 금액의 74~80%에 부실 PF 대출을 사들일 예정이다. 대금은 구조조정기금채권 등으로 지급된다. 캠코는 사들인 부실채권을 시장에서 매각할 계획이다. 이때 매각 가격이 저축은행에서 사들일 때의 가격에 미치지 못하면 차액은 저축은행이 캠코에 물어내야 한다. 금융위 고승범 금융서비스국장은 “구조조정기금이 손해를 보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공적자금의 일종인 구조조정기금을 투입한 만큼 부실 대출을 매각한 저축은행에 강도 높은 자구 노력을 요구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다음 달까지 저축은행과 경영개선협약(MOU)을 맺기로 했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들은 대주주 증자와 후순위채 발행, 계열사 매각, 조직·인력 감축 등을 통해 1년 안에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8% 이상으로 맞춰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못하면 금감원이 감독관을 파견해 지도하고, 부실 PF 채권 매입 계약을 해지한다. 이렇게 되면 해당 저축은행은 부실 PF 대출에 대한 대손충당금을 한꺼번에 반영해야 하고 BIS 비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최악의 경우엔 영업정지를 당할 수도 있다.

저축은행들은 일단 정부의 조치를 반기는 분위기다. 구조조정기금을 통해 부실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자구 노력을 요구하는 부분에 대해선 불안감도 갖고 있다. 익명을 원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감독 당국이 MOU를 맺는 과정에서 어떤 것을 추가로 요구할지가 궁금하다”며 “자구 노력을 과도하게 하면 영업이 급속하게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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