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투기자본 '치고 빠지기' 제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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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단기 투자를 목적으로 국내 증시를 드나드는 투기성 국제 자본의 치고빠지기식 투자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20일 금융감독위원회는 증권거래법에 '역외조항'을 마련해 해외에서 이뤄진 행위에 대해서도 그 효과가 국내에서 발생할 때는 제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또 국내에서 이뤄진 행위의 효과가 해외에서 나타날 때도 국내 증권거래법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된다.

역외조항 마련이 추진되는 것은 외국인의 국내 투자 비중이 시가총액의 44%에 달하면서 기존 증권거래법으로는 외국인에 의한 불공정 거래를 효과적으로 감독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 외국인 감독 강화의 필요성=최근 영국계 헤르메스자산운용이 삼성물산의 경영권이 인수될 가능성이 있다는 정보를 흘린 뒤 보유 주식을 처분한 사례가 계기가 됐다.

금감위는 헤르메스의 미심쩍은 매매를 조사해 필요하면 영국에서 관계자를 소환하는 등 조치를 취하기로 했지만 헤르메스 측이 불응할 경우 마땅한 제재조치가 없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역외조항이 있다면 이런 사례에 대해서도 국내 증권거래법을 적용해 불공정 행위 여부를 조사할 수 있게 된다.

금감위 관계자는 "현재 미국과 영국 등이 역외조항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외국 자본이 수시로 드나드는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이 같은 역외조항을 둠으로써 핫머니의 불공정 행위를 감독해 왔다는 것이다.

금감위는 이와 함께 외국 감독 당국에 금융거래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를 금융감독기구설치법에 새로 만드는 방안도 추진하기로 했다. 외국인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조사를 위해서는 상대 국가와 금융정보를 교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 배당.유상감자 기준도 손질=감독 당국은 과도한 배당이나 유상감자를 통해 회사의 알맹이를 빼가는 사례들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금감위 관계자는 "적지 않은 외국인이 당기순이익보다 더 많은 돈을 배당으로 받아가거나 유상감자를 통해 투자 원금을 회수하고 있다"며 "투자자 보호와 시장 불안 해소를 위해 사전 승인제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감위는 외국에서도 배당이나 유상감자에 한도를 두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이 같은 외국 사례를 검토해 국제기준에 맞도록 배당과 유상감자 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금감위는 또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가 이 같은 제도 개선 방침을 민족주의적이고 보호주의적인 조치라고 비판한 데 대해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금융시장 안전 장치라고 반박했다.

FT는 은행 이사회의 외국인 구성 비율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윤증현 금감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한국이 외국인의 국내시장 진입을 제한하려 한다고 지적했었다.

김동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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