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과 대중가요, 기록과 증언
박성서 지음
책이 있는 풍경
352쪽, 2만5000원
대중가요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포화가 한반도 전역을 휩쓸던 한국전쟁이란 비상시에는 더 그랬다. 전쟁의 상흔을 담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노래 이해연), 가족 이산의 아픔을 담은 ‘굳세어라 금순아’(노래 현인), 북진 주제곡이 됐던 ‘전우야 잘 자라’ 등 수많은 가요들이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고, 기쁨을 같이했다.
그 덕에 히트곡은 쏟아졌지만 연예인이라고 전쟁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육군 연예대에 편성돼 위문공연을 했던 이들은 입대 전 ‘위문 공연 중 죽더라도 국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에 ‘먹물도장’을 찍어야 했다. 실제 ‘사랑이 메아리 칠 때’를 부른 가수 안다성은 공연을 위해 전선부대를 방문하던 군용트럭에서 총탄이나 포격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는 공연 중에도 포격을 받아 수시로 중단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이건 책 내용의 일부다. 대중음악 평론가인 지은이는 10여 년간의 치밀한 자료조사와 생존 원로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전쟁가요 탄생배경, 공연 뒷이야기 등 그 발자취를 온전히 담아냈다. 여기에 레코드 라벨, 공연 포스터 등 450여 컷의 희귀 자료, 친필 악보, 전쟁가요 16곡을 수록한 음반을 곁들여 당시 가요계 풍경을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이를테면 군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만든 ‘전우야 잘 자라’가 1· 4후퇴에 즈음해서는 노랫말 중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란 대목이 불길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든가, 소음을 막기 위해 밤에 미군 담요를 둘러치고는 녹음해 기름 짜는 기계로 음반을 찍어냈다는 등 먼 나라의 오래 전 이야기 같은 대목을 만날 수 있다.
50대 이상에겐 향수를 자아내고, 화려하지만 가벼운 가요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뿌리’를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김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