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죽더라도 국가에 책임 묻지 않겠다’각서 쓰고 전선 찾아 나섰던 가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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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올해는 6·25 전쟁이 일어난 지 6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직도 전쟁의 성격과 원인을 두고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이 참혹한 전쟁이 우리 민족에 크나큰 상처를 남기고, 한편으로는 한국 현대사회를 형성하는 데 주요 변인이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때맞춰 6·25 전쟁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졌습니다. 참전군인의 육성, 대중가요를 통해 그날을 돌아보는 책을 골랐습니다.

한국전쟁과 대중가요, 기록과 증언
박성서 지음
책이 있는 풍경
352쪽, 2만5000원

대중가요는 시대의 자화상이다. 포화가 한반도 전역을 휩쓸던 한국전쟁이란 비상시에는 더 그랬다. 전쟁의 상흔을 담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노래 이해연), 가족 이산의 아픔을 담은 ‘굳세어라 금순아’(노래 현인), 북진 주제곡이 됐던 ‘전우야 잘 자라’ 등 수많은 가요들이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고, 기쁨을 같이했다.

그 덕에 히트곡은 쏟아졌지만 연예인이라고 전쟁을 비껴갈 수는 없었다. 육군 연예대에 편성돼 위문공연을 했던 이들은 입대 전 ‘위문 공연 중 죽더라도 국가에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각서에 ‘먹물도장’을 찍어야 했다. 실제 ‘사랑이 메아리 칠 때’를 부른 가수 안다성은 공연을 위해 전선부대를 방문하던 군용트럭에서 총탄이나 포격을 받기도 했고 심지어는 공연 중에도 포격을 받아 수시로 중단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이건 책 내용의 일부다. 대중음악 평론가인 지은이는 10여 년간의 치밀한 자료조사와 생존 원로 인터뷰 등을 바탕으로 전쟁가요 탄생배경, 공연 뒷이야기 등 그 발자취를 온전히 담아냈다. 여기에 레코드 라벨, 공연 포스터 등 450여 컷의 희귀 자료, 친필 악보, 전쟁가요 16곡을 수록한 음반을 곁들여 당시 가요계 풍경을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이를테면 군의 사기를 돋우기 위해 만든 ‘전우야 잘 자라’가 1· 4후퇴에 즈음해서는 노랫말 중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란 대목이 불길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든가, 소음을 막기 위해 밤에 미군 담요를 둘러치고는 녹음해 기름 짜는 기계로 음반을 찍어냈다는 등 먼 나라의 오래 전 이야기 같은 대목을 만날 수 있다.

50대 이상에겐 향수를 자아내고, 화려하지만 가벼운 가요에 열광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뿌리’를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하는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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