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 정치자금 창구… 각종 게이트 몸통' 국정원 의혹 확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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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2000년 4·13 총선을 전후해 당시 국가정보원 고위층이 벤처기업인에게 접근해 특수사업비 명목의 거액의 돈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 국정원이 여권의 정치자금 조성 창구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현 정부 들어 불거진 각종 게이트에 관계자들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국정원이 이들 게이트의 몸통이라는 의혹도 커지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전 MCI코리아 부회장 진승현씨에게서 1억4천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성홍(丁聖弘)전 국정원 경제과장의 진술에서 확인됐다.

<관계기사 3,4면>

丁씨는 지난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2000년 3월 엄익준 전 국정원2차장(작고)이 '진승현씨가 특수사업에 적합한 인물이니 만나보라'고 지시해 4월 6일께 일본인 사업가의 소개로 陳씨를 만났다"면서 "陳씨로부터 우선 특수사업 자금 3억원을 조달하려 했다"고 진술했다. 丁씨는 또 "같은해 4월 11일께 嚴전차장이 특수사업의 주체로 소개한 고위인사에게서 '수억원을 급히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고 같은달 18,19일 두차례에 걸쳐 서울 여의도 K마트 건물 1층 주차장에서 이 인사를 직접 만나 陳씨에게서 받은 돈 2억원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陳씨도 검찰에서 "丁전과장이 '김은성 차장이 긴요하게 필요하니 국가를 위해 무조건 2억원을 준비하라'고 말해 급히 돈을 마련해 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丁씨는 특히 陳씨를 만난 지 불과 이틀 만인 2000년 4월 8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장남인 민주당 김홍일(金弘一)의원 지역구에 내려가 선거자금 명목으로 1억원을 건네려 한 것으로 밝혀져 국정원의 정치자금 조성 의혹을 크게 하고 있다.

김은성 전 2차장을 비롯한 국정원 관계자들은 또 2000년과 지난해 검찰 수사가 이뤄진 정현준·이용호·윤태식 게이트에도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이들로부터도 정치자금을 조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한편 한나라당 박관용(朴寬用)총재권한대행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검찰 조사 결과 국정원이 4·13 총선자금을 모금했다는 의혹이 드러나고 있다"며 "신건(辛建)원장은 국정원의 정치개입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박재현·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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