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73년'DJ 납치사건' 느슨한 재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올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던 사카모토 준지 감독의 한·일 합작영화 '케이티(KT·사진)'는 1973년 일본에서 벌어진 김대중 대통령 납치 사건을 다뤄 진작부터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하지만 'DJ 납치'라는 역사성에 집중하면 의외로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감독 자신이 "양국에 얽힌 과거사를 다룬 이 영화가 두 나라의 거리를 좁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히긴 했지만, 정작 그가 주목한 것은 납치극이 벌어진 이면에 얽힌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이는 화자(話者)를 DJ 납치에 연루됐던 자위대 소령 도미타(사토 고이치)로 설정한 데서 잘 드러난다. "군복을 입지 않은 자위대는 어둠을 지키는 은둔자에 불과하다"는 소신을 가진 인물로 그려지는 그가 DJ 납치극에 가담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사랑하는 여인의 처참한 흉터를 수술해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도미타를 끌어들이는 것은 중앙정보부 요원 김차운(김갑수). 그와 그의 동료들을 움직이는 동인(動因)은 돈과 출세욕이다. 준지 감독의 역사적 상상력은 납치 음모를 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신문기자 가미카와(하라다 요시오), 한국어를 한 마디도 못하다가 DJ를 만나 민족의식을 싹틔우는 재일동포 소년 등 주변 캐릭터로 확장되면서 비교적 차분하게 가지를 쳐나간다.

하지만 주연 배우 김갑수의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듯이 봐달라"는 주문이 허망하게도, '케이티'의 극적 긴박감은 떨어지는 편이다. 하나 하나를 뜯어보면 흥미로운 캐릭터지만 이들이 쌓아가는 이야기의 힘은 종국에 이르러도 폭발력을 지니지 못한다.

납치극이라는 드라마틱한 소재에 비해 이야기 축조술은 다소 처진다는 인상이다. 김대중 대통령으로 연극배우 최일화가 출연했다. 제목 'KT'는 'Killing the Target'의 약어다. 12세 이상 관람가. 3일 개봉.

기선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