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에 멍들었다" 고달픈 수컷♂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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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위대한 Y 염색체 나라의 몰락, 기계 발달로 근육의 힘은 상대적으로 보잘것 없어졌고 현대 남성들은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는 중…, 그런 까닭에 감성 영역을 주무르는 여성주의는 뜨는 반면 재래식 남성성은 바닥 모를 추락을 거듭하는 중이다. 이제 코너에 몰린 남성성의 왜곡된 흐름을 살펴보며, 진정한 남녀 평등의 활로를 모색할 때가 아닐까? 여기까지가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들녘)의 작가 디트리히 슈바니츠가 남성 문화에 대한 이해를 구하며 『남자』에서 내세우는 발언들이다. 페미니스트들의 타도 1순위인 가부장제의 유령이 아직도 살아있는 마당에 이 무슨 소리인가하고 깨인 여성들은 지적할 것이다.

어쨌거나 세상은 변했다. 권력을 쥔 남자 쪽에 속하는 저자가 여성들에게 무릎을 굽히는 시늉과 함께 "말썽쟁이 남자를 이해해 달라"고 말하는 상황은 유교사회 한국은 물론 저자의 지적대로 군대식 명령 어조, 아카데미즘의 훈계 어조가 여전한 보수적 독일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들기 때문이다.

'母性 부정하라'중압감

사실 남녀 성에 대한 논란은 그동안 여성주의자들 내부의 '반쪽의 목소리'였다. 여성들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제2의 성』을 읽으며 여성으로 키워지는 데 분노하고,『이갈리아의 딸들』(황금가지)이 그려낸 여성 유토피아 가상세계에서 통쾌함을 느끼지 않았던가. 모계사회로까지 올라가 여성의 우월함을 제시하고, 이미 남성들에 의해 구획되어진 사회 질서를 뒤집자는 운동으로 페미니즘 역사를 이어 왔다.

그렇다면 이 책은 유럽사회의 알아주는 교양맨 슈바니츠가 남성들의 나약함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진 남성성도 건져올려 보겠다며 끼어든 형국이다. 남성들은 "이 웬 투항분자?"라고 할 것이고, 여성들은 "남자들은 아직도 멀었어!"라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다. 그러나 슈바니츠는 가부장제 회복을 주장하지도, 여성 운동을 비난하지도 않는다. 다만 남성이라는 '지구상에서 가장 특이한 종족'의 성격 규명 작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불모지 남성 연구는 슈바니츠 손에서 재미있는 읽을거리로 거듭난다.

감정 상태를 표현할 줄 모르고, 경쟁의 언어만 사용하는 남자들의 특성을 이야기한 대목에서는 무릎이 쳐진다. 남녀 심리·태도 분석서인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친구)보다 한 차원 높은 인문적 버전이라고나 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남성성이 우월하다는 것은 남자가 유포한 유언비어가 아니며, 반대로 남자가 미숙한 어린이 수준으로 머문 결과물이라는 주장 또한 허위라는 게 슈바니츠의 목소리다. 여성에게 구할 것은 남성성에 대한 이해이며, 남성과 여성 간의 갈등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이 해법이라고 제시한다. 지난해 독일에서 출간돼 슈피겔지 선정 베스트셀러 순위 1위를 30주간 차지했다는 독자 평가도 슈바니츠에게 동조하는 무리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해 獨서 엄청난 선풍

주장의 요체는 이렇다. 원시 집단에서는 우두머리만이 생식할 권한을 가졌다. 후에 궁정·할렘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는데 마초의 자손들 중에서도 또 경쟁에 이겨야만 생식할 수 있었으니 수컷의 요소는 더욱 남성적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보기에 여기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못잖은 또다른 남성 콤플렉스가 개입된다. 계집아이가 여자로 커가는 것은 자연스러우나 사내아이가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머니를 부정해야만 한다. 남자는 내부의 여성성을 끊임없이 억누르며 남자라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린다. 남성이 축구에 열광하고 정치판에 끼어들어 무리와 어깨동무를 하며 "으샤으샤" 하는 이유는 남성의 테스토스테론을 가끔 확인하고 싶어하는 방증이다. 그러나 서구 68혁명 이후 여성들의 감정적인 말하기가 대세를 이루고, 어느 순간 남성성은 '나쁜 것'으로 치부되는 상황이 빚어지게 됐다.

이번에도 슈바니츠는 홈런을 날렸다. 디지털 시대에 교양이라는 케케묵은 주제로 인문학의 부활을 꿈꾸더니 이번에는 남성 사회의 몰락하는 한 귀퉁이를 집어내 성공을 거뒀다. 물론 원시 부족국가부터 중세·근대·현대로 이어지는 시대 속의 남성상이 보스·기사·지식인·정치가·마마보이 등으로 나타난다고 증명하고, 남녀의 갈등관계가 어떻게 빚어졌는지를 신화·문학에서 찾은 슈바니츠의 박학다식이 가장 큰 흥행 요인이었다.

남성 억압의 역사 명쾌

전작 『교양』에서 2천5백년의 서양 문화사를 깊이·넓이를 한꺼번에 만족시키며 7백쪽에 요리해낸 그 솜씨가 여기서도 발휘된다. 제우스가 남편 암피트리온의 모습으로 변장해 알크메네와 하룻밤을 보낸다는 그리스 신화를 한편의 희곡으로 각색해 액자식으로 끼워넣고, 정형화된 남성 이미지가 전시된 미술관으로 갑자기 독자를 안내하는가 하면, 글 중간에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와 『로미오와 줄리엣』을 튀어나오게 하는 등 글쓰기의 유연함은 여전하다.

서술 대상인 남자를 '우리 남자는'이 아닌 '그'라고 객관화시키는 슈바니츠라고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의 공격에서 자유롭지 못할 듯하다. 그는 남자와 여자가 '시지프스의 돌'같이 무의미한 가사(家事)를 양분할 수 없는 까닭을 "남자들이 여자보다 돈을 잘 버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여자가 육아 때문에 작전 타임을 부르고 집에서 쉬고 있기 때문"(1백72쪽)이라고 적고 있다. 이런 오해와 여성성에 대해 얼렁뚱땅 넘어가는 서술 방식은 불만으로 남는다. 또 외형적으로는 독일보다 더 굳건해 보이는 한국의 남성 사회도 슈바니츠식 접근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도 든다.

홍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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