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정부의 對언론 분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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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홍콩 경찰이 26일 홍콩 중심지 센트럴에 있는 차터공원에 진입했다.'거주권 상실' 판결에도 불구하고 중국 귀환을 거부한 채 농성 중인 불법체류자들을 강제로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하루 전 홍콩 경찰총수인 레지나 입(葉淑儀)보안국장이 시위자들에게 둘러싸여 1시간동안 차 안에 감금됐던 수모에 대한 분풀이라도 하듯 경찰의 손길은 매서웠다.십여일째 농성 중인 3백여명의 불법 체류자들이 하나씩 경찰에 들려나갔다. 여기까지는 큰 문제가 없었다. '법대로'가 홍콩 경찰의 첫째 신조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취재기자들과의 충돌에서 시작됐다.

홍콩 경찰은 진압작전 직전 공원 한모퉁이를 '취재석'으로 지정했다. 얼핏보면 합리적인 처사로 보였지만 실상은 딴판이었다. 왜냐하면 취재석은 진압현장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취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기자들이 가만있을리 없다. 여기저기에서 사진기자들이 취재석을 뛰쳐나와 생생한 현장을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바로 이 순간이었다. 경찰은 돌연 기자들에게 수갑을 채우기 시작했다.이 과정에서 카메라가 부서지기도 했다.

유력지 명보(明報)의 펑사오룽(馮少榮)기자를 비롯한 3명의 취재기자가 수갑을 찬 채로 불법 체류자들과 함께 끌려나가 15분간 억류됐다. 승강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기자들도 있었다. 홍콩 언론은 "진압과정에서 빚어진 기자들에 대한 폭거는 명백한 언론탄압"이라는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정부에 대한 강력한 대응도 선언했다.

심지어 친중국·친정부적인 문회보(文匯報)조차도 사설을 통해 "농성장 해산조치는 이유가 있지만 기자에게 수갑을 채운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나 홍콩 정부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자세다. 진압 책임자인 황파이녠(黃拍年)은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취재석을 벗어난 데 대한 응분의 조치"라고 강조했다. 둥젠화(董建華)행정수반 역시 "홍콩은 법치사회"라며 경찰 처사를 두둔했다.

홍콩 정부의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정이 정당할 때 원칙은 힘을 얻는다. 불법 체류자 처리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여론에 시달린 '한'을 홍콩경찰이 '기자 수갑채우기'로 풀었다면 참으로 유감이다.무리한 대응은 불필요한 역풍을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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