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탕 시식회가 웬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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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전국보신탕식당연합회가 월드컵 기간에 외국 관광객을 상대로 '보신탕 거리 시식회'를 열기로 했다고 한다. 최근 서울의 프랑스외국인고등학교 학생·교사가 보신탕을 먹고 난 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에 자극을 받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 협회의 이처럼 '도전적'인 결정은 취소하는 게 옳다고 본다. 거리, 그것도 축구경기장 주변에서 보신탕 시식회를 한다는 것은 격식있는 상차림을 전통문화로 지니고 있는 우리의 식문화와 배치될뿐더러 자칫 외국인들에게 '보신탕 시위'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줄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앞두고 우리의 고유한 음식인 보신탕에 대해 해외 일각에서 줄기차게 비판을 하거나 심지어 조롱거리로 삼기까지 했던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88서울올림픽 당시 외국인들을 의식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보신탕의 이름을 '사철탕''영양탕' 등으로 바꿔야 했는가 하면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보신탕 업소를 눈에 잘 띄지 않는 뒷골목으로 옮기기까지 했던 일을 생각할 때 업주들의 분통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고육지책이라 하더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우리는 이미 본란에서 보신탕에 대한 외국의 비판적 태도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보신탕 문화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협회는 식당 리스트가 포함된 보신탕문화 안내책자를 만들어 공항 등에서 보급하고 궁금증으로 업소를 찾은 외국인들에게 약간의 음식을 서비스하도록 회원사에 권장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음식문화란 맛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상차림, 먹는 예법, 분위기와 맛이 한데 어우러져 형성되는 것이다.길거리에서 '맛보기'로 아무렇게나 나눠주는 방식은 오히려 우리의 오랜 음식문화를 욕보이는 일이면서 외국인들에게 보신탕 혐오증을 더 보태는 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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