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舊敎界 '문화사역' 두 주역을 만나다- 잡지 『들숨날숨』 편집인 조광호 신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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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종교와 그 바깥 세계, 그리고 종교 간의 소통에는 문화만큼 훌륭한 도구가 없다. 우리 종교계가 기복주의·물량주의로 흐른 면이 없지 않아 일반인의 불신을 산 것은 사실이지만 종교의 보편적 가치는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다. 문화를 매개로 가족 사랑·화해 등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위 '문화사역'이 기독교에서 활발하다. 이 분야 천주교와 개신교계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조광호(55)신부와 김관영(35)목사를 만났다.

5월호가 창간 3주년 기념호인 『들숨날숨』은 매우 멋스런 잡지다. 외양만으론 종교계에서 발행하는 잡지라는 냄새가 전혀 나지 않는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냄새란 버려도 큰 탈 나지 않을 권위와 고루함 같은 것이다. 고정독자만 7천명이 넘는다.

그 뒤에는 회화·조각·판화 등의 장르에 두루 능해 '르네상스적 예술가'로 통하는 조광호 신부가 버티고 있다. 이 잡지의 편집인인 그는 디자인에서부터 편집 방향, 재정 문제까지 두루 관여한다. 삽화와 사진의 상당 부분도 그의 몫이다.

"가톨릭의 보편적인 진리를 전할, 교회와 사회의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천주교인들끼리만 모여 종교를 이야기하던 시대는 이제 지나갔습니다. 선의를 가진 사람 모두가 함께 어울려야 합니다."

지나친 물질문명과 개인주의·퇴폐문화 등 '죽음의 문화'도 그 나름으로 사회적 배경을 가지는데, 이를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그중에서 후대로 넘겨줄 문화를, 말하자면 생명의 문화를 발굴하는데 사회 전 구성원이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그동안 『들숨날숨』은 폭력·발(足)·빛 등을 소재로 다루었으며 이번에는 화해를 택했다.

이 잡지의 강점은 문화와 영성을 주로 다루고 있어 영적 휴식과 문화 지식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필자들이 쟁쟁한 것도 미덕이다. 이번호만 봐도 서우석 서울대 음대교수,시인 구상, 무용가 홍신자, 작곡가 김영동, 시인 최영미 등의 글이 실렸다.

"예전의 경험으로 볼 때 종교 잡지라면 거절부터 하고보는데 원고청탁에 전혀 어려움을 겪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잡지 이름을 대면 들쭉날쭉, 들숙날숙이라고 받더군요. 쉽고, 분명하고, 메시지가 강한 글이 많지요. 디자인도 현대적이고. 좋은 필자들의 좋은 글을 좋은 그릇에 담고 있는 셈입니다."

알찬 글을 싣는 잡지라는 입소문은 고급 독자들을 끌어들였다.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그의 예술관이 궁금했다.

"누구나 예술가의 소질을 타고 납니다. 관습과 인습에 얽매이지 않고 신이 내려준 창조적인 정신을 표출하는 것이 바로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술가가 따로 존재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말이죠. 예술의 종말이라고나 할까요."

가톨릭대학 신학부를 졸업하고 1986년부터 5년동안 독일 누른베르그대학에서 현대미술을 공부한 조신부는 90년에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를 설립, 교회미술 연구를 하고 있다. 부산 남천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서울 지하철 2호선 당산철교 외벽의 벽화가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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