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기업 실적 부진에 발목 잡힌 국내 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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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미국 나스닥시장이 다시 국내 증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보기술(IT)분야를 중심으로 미국 기업들의 1분기 실적이 시장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것으로 속속 발표되면서 나스닥지수는 연 5일째 하락했다. 23일 나스닥지수는 1,730포인트까지 떨어졌다.

나스닥지수가 이처럼 연일 떨어지자 최근 반짝 순매수를 보였던 외국인들이 다시 순매도로 돌아섰다. 23일 7백37억원어치의 주식(코스닥 포함)을 처분한 외국인은 24일 순매도 규모를 9백3억원으로 늘렸다.

<그래프 참조>

국내 기관들이 펀드 환매 때문에 매물을 내놓는 가운데 외국인들까지 다시 순매도로 돌아서자 주가는 크게 출렁이고 있다. 24일 종합주가지수는 전일보다 10.01포인트 떨어진 915.69를 기록했고, 코스닥지수도 1.54포인트 하락한 79.48로 마감했다.

이날 종합지수는 한때 19포인트 이상 떨어져 900선을 위협받기도 했으나 삼성전자의 선방(1.2% 상승한 43만2천원) 덕분에 하락 폭을 좁힐 수 있었다.

◇미 기업들의 부진한 실적=미국의 대표적 정유업체인 엑손모빌은 23일 올 1분기 주당 순이익이 30센트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절반에도 못미쳤다고 발표했다. 화학업체인 듀폰도 1분기 실적이 월가 예상치를 밑돌았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에릭슨과 월드컴 등 통신업체들이 기대에 못미치는 실적치를 내놓았고 반도체장비업체들도 좋지않은 성적표를 제출했다.

◇경기회복 신호와 엇박자=미국의 거시경제 지표들은 뚜렷하게 좋아지고 있는데도 기업 실적이 이처럼 부진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올 1분기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은 5%대에 달할 것이란 낙관적 관측이 우세하다.

그럼에도 기업 실적이 나쁜 것은 최근 미국의 경기회복이 실제 소비자들의 수요 증가보다는 앞으로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 기업들의 재고 늘리기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미국의 제조업 재고는 전달보다 1.4% 증가했다.

재고가 늘어나면 생산활동이 왕성해져 거시 경제지표는 좋아지지만, 아직 팔리지 않은 상황이다보니 기업 실적지표는 여전히 나쁘게 나타난다.

SK증권 전준모 연구위원은 "특히 IT업종의 경우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본격 회복돼야 실적이 개선될 수 있다"며 "그러나 미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많이 해놓았기 때문에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고 진단했다.

김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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