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밀항 준비시켰다더라" 崔씨 폭탄 발언에 검찰 당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최규선씨에 대한 영장 실질심사는 19일 서울지법 319호 법정에서 예정시간보다 1시간30분이 늦은 정오쯤 시작됐다.

이현승 판사와 검사,崔씨와 崔씨 변호인 두명이 참석했다. 실질심사는 비공개가 원칙이어서 기자들은 문틈에 귀를 기울인 채 법정 상황을 취재했다. 崔씨는 검찰측 신문에 담담하게,때로는 감정에 겨운 듯 격한 어조로 입장을 밝혔다.

실질심사가 40여분 진행됐을 때 崔씨의 폭탄발언이 터져나왔다. "청와대측에서 나에게 도피를 권유했지만 난 죄가 없어 나가지 않겠다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도주 의사가 있느냐는 변호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崔씨는 진술을 계속해 나갔다.

"밀항이라도 시키겠다고 했다. 부산에 준비해 놨다는 말도 들었다"는 진술이 거침없이 이어졌다. 그는 또 "모 인사가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전에 미국으로 나가라는 말도 했다"고 했다.

기자들은 실질심사를 끝내고 나오는 강호성(姜淏盛)변호사를 가로막았다. 문틈으로 들은 말이 정확한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姜변호사는 "청와대 얘기는 나온 적 없다"며 "보도하면 법적 대응하겠다"고 말한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기자들은 李판사를 찾아갔다.그러나 李판사도 "영장심사는 비공개 사항이니 확인해 줄 수 없다"며 함구했다.

검찰 역시 당황한 모습이었다. 기자들의 확인 요청에 서울지검 김회선(金會瑄)3차장은 약속시간보다 30여분 늦은 오후 4시쯤 "실질심사는 기록에 남지 않기 때문에 검사의 기억을 되살린 내용"이라며 기자실로 전화를 걸어왔다.

崔씨가 경찰청 특수수사과장 최성규 총경을 통해 청와대 李모비서관의 해외 출국 의견을 전했고, 밀항 얘기는 崔총경의 의견이었다는 요지였다.

법원·검찰·기자실과 정치권을 종일 뒤흔들어 놓은 崔씨는 오후 8시20분쯤 구속영장이 발부돼 서울지검에서 구속이 집행됐다.

서울지검 청사 1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崔씨는 기자들이 "윤여준 의원을 통해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에게 돈을 줬느냐"고 묻자 "나는 정치인에게 돈을 주지 않는다"고 부인했다.

崔씨는 비장한 표정으로 "김대중 대통령 당선 후 30억달러의 외자유치를 하는 등 조국에 헌신했는데 나의 노력이 잘못 비춰지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청와대측으로부터 도피 권유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며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는 말을 남긴 채 서울구치소행 승용차에 올랐다.

장정훈·김승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