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지리산 뻐꾹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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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송수권(1946~ ), 「지리산 뻐꾹새」 전문

여러 산 봉우리에 여러 마리의 뻐꾸기가
울음 울어
떼로 울음 울어
석 석 삼년도 봄을 더 넘겨서야
나는 길 뜬 설움에 맛이 들고
그것이 실상은 한 마리의 뻐꾹새임을
알아 냈다.

智異山下(지리산하)
한 봉우리에 숨은 실제의 뻐꾹새가
한 울음을 토해 내면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또 뒷산 봉우리가 받아 넘기고
그래서 여러 마리의 뻐꾹새로 울음 우는 것을
알았다.

지리산중
저 연연한 산봉우리들이 다 울고나서
오래 남은 추스림 끝에
비로소 한 소리 없는 강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섬진강 섬진강
그 힘센 물줄기가
하동쪽 남해를 흘러들어
남해군도의 여러 작은 섬을 밀어 올리는 것을 보았다.



한 마리 뻐꾹새가 지리산 수많은 봉우리를 다 울리는 것은 그 울음소리가 이 땅을 닮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울음을 닮았기 때문이다. 다 울지 못하고 간 많은 울음을 닮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아직도 울어야 할 더 많은 울음은 남아서,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 울음이 함께 울리며 들리기 때문이다.

김기택<시인>

*** 바로잡습니다

12월 18일자 31면 '시가 있는 아침'에서 소개한 송수권 시인의 출생연도는 1946년이 아니라 1940년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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