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우리 서로 섬기며 살자<5318> 17. 교회 찾은 YS·全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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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지난해 12월 9일 김영삼씨를 우리 교회(수원 중앙침례교회)로 초청해 신앙간증집회를 열었다. 그런데 시작도 전에 큰일 났다는 생각부터 앞섰다. 전혀 신앙간증집회의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씨의 대변인 역할을 맡고 있는 박종웅 한나라당 의원도 오고, 신문기자들도 잔뜩 몰려왔던 것이다.

결국 김씨는 우리 교회에서 신앙간증이 아닌 정치연설을 하고 말았다. 그 내용은 그 다음날자 일간지에 크게 보도됐다.

김씨는 이회창 한나라당 대권주자에 대한 좋지 못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나보다 언론이 더 잘 요약했을 것으로 믿어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전한다.

"한번 신의를 저버린 사람은 국민을 또다시 배신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선 안된다.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이회창후보는 낮은 지지율 때문에 조급해진 나머지 탈당 요구 등 온갖 방법으로 나를 공격했다. 이회창씨가 그 짓(배신)만 안했어도 김대중씨에게 1백만표 이상 표차로 승리해 이미 대통령이 됐을 것이다. 대통령도 먼저 인간이 돼야 하는 법이다."

김씨는 또 김대중 대통령에 대해서도 "나라 전체를 이토록 망쳐놓고 혼자만 살려고 집권당 총재 자리에서 도망쳐 버렸다. 그것은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다음날 새벽기도 시간에 나는 교인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의 말을 했다.

나 개인적으로는 김씨가 남은 인생을 신앙간증을 하면서 기독교 장로로서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우리 교회에서 짧은 연설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교인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자신을 불교 신자라고 소개하는 전씨는 우리 교회의 예배에 두 번 참석했다. 99년 성탄절과 2001년 11월 추수감사절 예배였다. 그 때마다 40~50명의 인사들이 전씨와 함께 우리 교회를 찾았다. 추수감사절 예배에선 토머스 슈워츠 미8군 사령관이 참석하여 인사말을 했는데, 그 순간 나는 전씨에게도 그런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씨는 예정에 없는 부탁에도 단상에 올라가 위트 넘치는 연설을 했다.

"백담사에 있을 때 하루는 기독교인들이 나를 찾아와 먹을 것도 주고 얘기도 많이 들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는 안보이는 것이었습니다. 절이 마귀의 소굴이라며 건너편에 남아 있었던 겁니다. 마귀의 소굴이라면 대장이 앞장서야지 자기는 빠지고 교인들만 보내면 진정한 목사가 아니지요. 김목사는 그런 소굴에 여러 번 찾아왔습니다. 오늘 김목사의 설교대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이런 요지의 연설이었는데 많은 교인들을 감동시켰던 것 같다. 그런 전씨가 다음달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할 계획을 잡고 있으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간의 유혈충돌이 전정되지 않고 있어 실현이 불투명하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은 내가 전직 대통령들이 청와대에 들어가기 전이나 대통령으로 재직할 때, 퇴임 후 여론이 나빠져 호된 질책을 받을 때, 심지어 교도소에 갇혀 있을 때도 그들과 변함없이 친하게 지내는 이유가 뭔지 궁금해한다.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전도의 사명을 받은 목사로서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죠. 목사로서 위로가 필요한 곳에 위로를 전하는 것이 내 사명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과거 때문에 그를 영원히 배척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가 아닙니다."

나는 대통령을 만나면 남들처럼 손자 얘기, 자녀 얘기를 한다. 특별히 정치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높으신'분들 얘기는 접고 내가 손자이고 아들이었던 시절, 그리고 내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되기까지 밟아온 그 인생의 발자취에 얽힌 이야기로 돌아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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