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절반 30분만에 잿더미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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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시뻘건 불덩어리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니 무서워서 피하기에 바빴어유."

15일 오전 10시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충남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 마을. 인근 백월산 줄기에서 덮친 불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이번 불로 1백50평짜리 집과 곳간에 쌓아둔 80㎏들이 벼 1백50가마를 잃어버린 지용덕(54)씨는 안방에 두었던 돈을 찾기 위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잿더미 속을 뒤지고 있었다.

池씨는 "야산에서 옮겨붙은 불이 30분 만에 집을 모두 태워버렸다"며 "대학에 다니는 딸(19)의 다음 학기 등록금으로 내려고 2백50만원을 안방에 남겨두었는데 그것마저 재로 변했다"고 말했다.

축사 3개동과 돼지 1천마리를 잃어 약 5억원의 재산피해를 본 장석무(66)씨는 아예 기절해 병원에 후송됐다가 네시간 만에 정신을 되찾았다.

張씨는 "불길을 보고 돼지를 살리기 위해 축사로 달려갔는데 속수무책이었다"며 울먹였다.

불길이 신흥리 마을 앞산에 도착한 것은 14일 오후 3시쯤. 초속 34m에 이르는 강한 바람을 타고 불길은 금세 계곡을 넘어 2백m쯤 떨어진 마을 이곳 저곳으로 날아왔다. 이로 인해 신흥리 마을 37가구 중 17가구의 집과 축사가 몽땅 탔다. 불과 30분~1시간 만에 벌어진 참변이었다.

14일 예산·청양군 일대를 휩쓸고 간 산불은 올들어 발생한 전국 산불가운데 피해규모가 가장 컸다.

이번 불로 집 34채가 타 이재민 60여명이 발생했고 축사 7채에서 기르던 가축 1천2백여마리가 타 죽어 31억5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또 청양군 비봉면과 예산군 신양·광시면 일대 임야 1천1백50㏊가 재로 변했다.다행히 주민들은 마을회관 등으로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이날 불은 14일 오후 2시쯤 청양군 비봉면 중묵리 야산에서 처음 발생, 강한 바람을 타고 인접 예산군 신양면쪽으로 옮겨붙었다. 불이 난 지점이 충남 내륙 산악지역이 연결된 곳인 데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 피해는 더욱 컸다. 이 불은 공무원·의용소방대원·군인 등 2천8백여명의 노력으로 15일 오전 8시30분쯤 꺼졌다.

경찰은 이번 불이 등산객이나 성묘객이 버린 담뱃불로 일어난 것으로 보고 조사 중이다. 도는 피해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줄 것을 중앙정부에 건의했다. 또 주민들의 생계안정을 위해 재해구호기금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도 관계자는 "인재로 분류되는 산불은 원칙적으로 자연재해대책법이 적용되지 않지만 각종 피해대책기금 등을 활용, 피해 주민을 최대한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예산=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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