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에 걸린 임산부 담담한 母性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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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지난해 개봉됐던 한국 영화 '하루'(한지승 감독)는 무뇌아를 임신한 한 부부의 고통을 극대화했다. 프랑스 영화 '줄리엣을 위하여'(사진)도 '하루' 못지 않게 비극적이다. 임신 5개월의 첼리스트 엠마(카랭 비아르)가 유방암에 걸린 것. 엄마의 수술을 위해 아기를 포기해야 하느냐, 아니면 엄마의 생명을 '담보'삼아 아기를 출산해야 하느냐. 참으로 곤혹스러운 설정이다. 그럼에도 '줄리엣을 위하여'의 어조는 담담하다.

여성 감독 솔베이 앙스파흐는 자신이 직접 겪은 체험담을 이런 객관적 장치를 통해 보다 보편성 있는 얘기로 끌어올렸다. 절대 '오버'하지 않는 냉정한 몸짓, 천형(天刑)의 고통에 빠진 주인공들의 섬세한 심리묘사가 인상적이다. 프랑스 영화 특유의 절제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주목할 부분은 등장 인물의 변화 과정이다. 아기를 온전하게 낳기 위해 온갖 애를 쓰는 엠마의 분투, 처음엔 아기에 무관심했다가 점차 엠마를 따뜻하게 감싸안는 남편 시몽(로랑 뤼카스)의 헌신 등이 공감있게 그려진다.

"평생 한쪽 가슴 없는 여자랑 살 수 있어?"라고 묻는 아내에게 남편은 다음 같이 대답한다. "당신 머리, 가슴, 엉덩이가 없어도 좋아. 참, 엉덩이는 있어야겠다"라고. 처절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감독의 여유가 느껴진다.

'줄리엣을 위하여'는 어른들의 성장기다. 마지막 장면, 아무도 없는 무균실 독방에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을 편안하게 기다리는 엠마의 모습까지 말이다. 원제 Haut les Coeurs! 전체 관람가. 20일 시네큐브 개봉.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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