風에 혼란스러워진 영남 민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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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구도 고민하고 있었다. 다만 부산은 노풍으로 시내 전체가 떠들썩한 분위기였지만 대구는 아직은 차분했다.

12일 낮 대구 서문시장. 대구의 바닥 민심 생산지란 평가를 받는 이 곳에서 '대구부동산'을 43년째 한다는 석재학(72)씨는 노풍에 대해 묻자 "다 도둑놈"이라고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

옆에 있던 이수영(66)씨도 "경륜이 짧지"라고 맞장구쳤다.

이들은 "이회창이 안좋나. 그런데 서민의 아픔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라고 했다. "대구 사람들은 겉으로는 표현을 안하지만 변함없고 끈질기게 밀어주는 스타일이데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50m쯤 떨어진 '단비다방'의 분위기는 달랐다.

청·장년층이 주 고객이라는 이 곳에서 이은영(34·여)씨는 "노무현씨가 신선하잖아예"라고 말했다. 이민자(35)씨는 "노무현씨가 대통령감은 아니지예. 그래도 꼴보기 싫은 정치판을 확 엎어버릴 수는 있을 것 같네예"라고 했다.

택시기사 문정기(34)씨는 "손님들이 옛날에는 한나라당 얘기만 했는데 요샌 노무현씨 말도 적잖게 하데요. 표가 간다고 봐야 하지 않겠심니꺼"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회창씨를 찍겠다"고 했다.

15대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지지했다는 임완규(45)씨는 "나는 노무현씨를 찍겠지만 아직은 이회창 지지자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내 느낌으로는 적어도 7대 3 아니면 6대 4"라고 추정했다.

金모(38·여·자영업)씨는 "관심없다. 후보가 우리 고장 사람도 아니고…"란 말도 했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박근혜(朴槿惠)의원에 대해선 반응이 냉담했다. 대명동에서 20여년을 산 배모(46)씨는 "씰데없이 뛰쳐나가서 사람들을 헷갈리게만 하고 뭐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대구·경북 지역 여론조사를 전문으로 하는 '아이너스'의 이근성(根盛)이사는 "후보에 대한 관심과 지지는 분명히 있다"며 "그러나 대구·경북의 보수 정서는 겉으로 잘 표출되진 않지만 강하다"고 말했다.

아이너스의 최근 조사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고문을 12%포인트 정도 앞섰다고 한다.

대구·경북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은 3월 1일 6백~7백명에서 4월 10일엔 2천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노사모 대구·경북 대표일꾼 김진향씨는 "고문이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면 이곳에서도 '민주당도 우리당'이라는 정서가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대구=이정민·고정애 기자

'노풍(風·노무현 지지 바람)'은 과연 영남권에도 상륙했는가.

줄잡아 1천만명의 유권자가 있는 영남권의 민심은 차기 정권의 향배에 결정적 변수 중 하나로 작용할 것임에 틀림없다.얼마 전까지 한나라당의 가장 확실한 지지 기반이었고 '이회창(會昌)대세론'의 근거였던 영남이 경남 출신 민주당 노무현(武鉉)고문의 출현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그 고민의 현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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