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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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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된 사진들이 한국에 왔다. 2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퓰리처상 사진전’에 걸린 145점이다. 1942년부터 2010년까지 퓰리처상의 ‘그 해의 보도사진’으로 뽑힌 사진들이 현대사 격동의 순간을 증언한다.

퓰리처상 2007년 수상작 ‘바리케이드를 사수하며’, 오뎃 밸릴티. [AP통신]

전 세계 사진기자들은 현장에 더 가까이 다가가 사실을 잡아내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졌다. 2007년 미얀마 양곤에서 무장한 진압군에 맞선 시위대 속에서 총을 맞고 죽어가면서도 손에 든 카메라를 치켜들었던 일본인 방송 기자 켄지 나가이의 모습은 숭고해 보인다.

총으로 위협하는 이스라엘 군인들 앞에 홀로 선 팔레스타인 여인 닐리에게 렌즈를 맞췄던 오뎃 밸릴티는 사진을 찍은 직후 이스라엘 군인이 휘두르는 곤봉 앞에 쓰러졌다. 닐리는 밸릴티에게 “그들이 우리의 머리를 깨뜨릴 수 있지만, 영혼까지 깨뜨리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21일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 ‘퓰리처상 사진전’ 개막식에서 맥스 데스포 전 AP통신 기자의 1951년 수상작 ‘대동강 철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참석자들. 왼쪽부터 맥스 데스포, 전시기획 큐레이터 시마 루빈, 스톤브릿지캐피탈 김지훈 사장, 한사람 건너 박보균 중앙일보 편집인, YTN 홍상표 상무. [김태성 기자]

절박한 순간 못지않게 가슴을 저미는 아름다운 인간 풍경도 보는 이 눈을 사로잡는다. 살육과 만행의 전쟁터로 변해버린 고향 코소보를 탈출한 알바니아 사람들을 반갑게 맞아주는 곳은 없었다. 철조망을 뚫고 아이를 건네주는 모습을 찍은 캐롤 구지는 “어떤 사진도 눈물과 고통, 그들이 헤치고 지나온 지옥을 설명할 수 없었다”고 썼다. 아프가니스탄을 해방시킨 탈레반의 치열한 저항 장소였던 마자르 샤리프에 도착한 제임스 힐은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는 할아버지를 사진에 담았다. 그는 “비둘기의 날개엔 희망이 자리잡고 있다. 마자르는 전쟁의 바다 속 평화가 깃든 작은 공간”이라고 회고했다.

1993년 수상작 ‘바르셀로나 올림픽’, 켄 가이거. [댈러스 모닝 뉴스]

이날 개막식에는 특별한 손님이 멀리 미국에서 찾아왔다. 1950년 11월 폭격 맞은 대동강 철교를 기어서 건너는 평양 피난민 사진을 찍었던 전 AP통신 사진기자 맥스 데스포(97)다. 한국전쟁의 참상을 단 한 컷으로 응축했던 ‘대동강 철교’로 그는 1951년 퓰리처상을 받았다.

데스포는 100세 가까운 나이에도 한 손에 카메라를 든 채 꼿꼿한 모습으로 인사했다. “내가 ‘대동강 철교’ 사진 속에서 발견한 것은 그 큰 시련 속에서도 한국인이 잃지 않았던 강인함, 투지, 용기였다.” 300여 명 참석자들이 뜨거운 박수를 보내자 그는 “1954년 전쟁이 끝난 뒤 떠날 때를 떠올려보면 지금 한국은 생기 넘치는 사람들과 완벽한 재생으로 놀라운 곳이 됐다”고 화답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시마 루빈(뉴욕 BEI 대표이사)은 “이미 세계 여러 도시에서 ‘퓰리처 사진전’의 순회전이 열렸지만 서울 전시는 맥스 데스포가 참석했기에 더욱 특별하다”고 평가했다. 8월 28일까지. 02-2000-6293.

정재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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