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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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사랑의 완성형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정의할 수는 있는 것일까요?

사랑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이제 동성간의 사랑에까지 범위를 넓혀가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뮤직 비디오에서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한 대중문화가 동성애에 빠르게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테지요.

그런데 만화에서 동성애의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순정 만화계에서 동성애에 보낸 관심은 동성애에 대한 존재론적 의미까지 정립해 나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 역사는 30년 이상을 거슬러 갑니다. 그 와중에서 여성들을 위한 포르노, 페미니즘의 탈을 쓴 가부장적 팬터지라는 비난을 받긴 했지만 말입니다.

먼저 이정애의 『열왕대전기』를 보실까요. 메시아가 될 운명을 타고난 IQ1백32의 소년 강개토와 신의 사명을 받은 12명의 천재 소년들간에 펼쳐지는 전쟁을 그린 묵시론적 작품입니다. 데뷔작 『헤르티아의 일곱기둥』 이후 남녀의 성 역할과 이성애에 대한 의문을 꾸준히 제기해온 이정애는, 동성간의 사랑으로 어릴 적 마음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주인공을 통해 "동성애는 성(性)을 뛰어넘은 사랑이기에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완전한 사랑에 가까울 수 있다"는 동성애관을 뚜렷이 하고 있습니다. 『열왕대전기』는 유난히 검열이 심했던 한국적 상황에서 자의로, 혹은 타의에 의해 수 차례 연재와 연재 중단을 반복하기도 했었지요.

요시다 아키미의 『바나나 피시』는 드물게 하드 보일드한 스타일의 동성애 만화입니다. 주인공 애쉬는 강렬한 카리스마를 가진 스트리트 갱의 두목입니다. 어려서부터 성적인 착취를 경험한 애쉬의 닫힌 마음은, 순수한 마음의 일본인 사진작가 에이지를 만나면서 처음으로 인간의 온기를 경험하게 되지요.

절대적인 믿음 속에서 마침내 두 사람의 관계는 우정을 넘어선 사랑으로 발전하지만,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는 약물 '바나나 피시'를 둘러싼 갱들의 다툼 속에 애쉬가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비극으로 막을 내립니다. 『바나나 피시』는 1998년 일본의 권위 있는 한 만화전문지에 의해 역대 최고의 일본만화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동성애 만화를 통해 열린 성담론을 담아내고자 애쓴 작가들의 노력은, 만화문화 안에 퀴어(동성애)의 흐름을 일찍이 형성해 왔습니다.

이를 일탈로 읽거나, 아니면 금기에 대한 발칙한 도전으로 읽는 독자들도 있겠지만요.

<만화기획자·hojenhoo-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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