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집착력 키우면 영재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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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김연아, 빌 게이츠, 비틀즈... 이들의 공통점은 과제집착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과제집착력이란 한 가지 과제나 영역에 오랫동안 집중하는 능력을 말한다. 미국의 영재학자 조지프 렌줄리(Joseph Renzulli)는 과제집착력을 지능, 창의성과 함께 영재의 3대 요소로 꼽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지능이나 창의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날 확률이 높지만 과제집착력은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얼마든지 향상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1. 소윤아(서울 불암초 5)양은 지난해 3월부터 북부교육청 영재교육원에 다니고 있다. 주변사람들은 소양을 과학영재라 부르지만 어머니 조미경(41·서울 노원구 중계동)씨는 “윤아의 영재성은 끈기와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소양은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더라도 포기할 줄을 모른다. 문제 하나를 두고 혼자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씨름을 벌일 때도 많다. “하루는 제가 근처 마트로 1시간 반 정도 쇼핑을 다녀왔는데 같은 문제를 계속 풀고 있더라고요. 하도 답답해서 뭘 했나 유심히 봤더니 연습장에 지금까지 배운 수학적 개념과 공식을 전부 정리해놨어요. 밤을 새서라도 문제를 풀 기세였어요.”

소양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필요로 하는 어려운 과학실험도 끝까지 완수해내고야 만다. 몇 달 전에는 영재교육원에서 ‘수중에서 감자를 재배해보라’는 과제를 내줬는데 두달을 거기에 매달려 결국 하얀 감자 꽃을 피워내고야 말았다. 다른 학생들은 한 달을 못넘기고 포기한 고난도 과제였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무순 기르기’ 과제를 수행 중이다. 짓궂은 남학생들이 무순에 해코지라도 할까봐 매일 아침 일찍 등교해 물을 주고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감시를 한 덕분에 소양의 무순이 반에서 제일 많이 자랐다.

한 때 조씨는 소양의 지나친 과제집착력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함께 문제를 풀고 토론을 하면서 딸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다. 조씨는 “어려운 문제는 가족 모두가 A4용지에 풀어보고 어떻게 풀었는지 이야기해보는데 경쟁심을 자극할 수 있어 효과적”이라며 웃었다.
 
#2. 김도연(서울 덕암초 5)군은 지난 3월 북부교육청 영재교육원에 합격했다. 교육청에서 인정받은 수학영재지만 어머니 고영복(38·서울 노원구 중계동)씨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답에 접근할 줄은 알아도 수식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능력은 아직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군은 수학 문제를 풀 때 절대 해답을 보지 않는다. 어려운 문제는 30분 정도 고민하다 다음날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본다. 다양한 수학교구는 물론 레고와 블록 같은 장난감도 수학공부에 적극 활용한다. 그러다 보니 정해진 문제풀이 과정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답을 찾아낼 때가 많다. “입체도형의 부피를 구하는 문제를 풀 때였어요. 공식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정답을 맞혔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집에 있는 교구를 총동원해 나름대로 계산을 한 거였어요. 족히 1시간은 걸렸을텐데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어요.”

고씨는 김군이 정해진 공식을 이용해 문제를 풀지 않았다고 해서 나무라거나 다그치지 않는다. 해설지에 의존하기 시작하면 문제해결력을 키울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씨는 “도연이의 승부욕이 강해 목표와 보상을 동시에 주면 성취욕이 더 커진다”며 “모르는 문제가 있을 땐 정답에 접근할 수 있는 힌트를 제시하고 답을 맞혔을 때 칭찬과 격려를 해준 것이 과제집착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문제 많이, 빨리 푸는 것보다 스스로 풀어야

시매쓰 수학연구소 조경희 소장은 “소양과 김군의 경우 과제집착력이 강한 대표적인 후천적인 영재”라고 설명했다. 과제집착력이 강한 학생들은 스스로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다른 사람이 개입하는 것을 거부한다. 이들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욕이 강하기 때문에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정답을 유추해내려 노력한다. 과제에 집중하는 시간이 길어져도 지루해 하지 않고, 자신이 알아낸 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것도 과제집착력이 높은 학생들의 특징이다.

영재의 조건에서는 타고난 지적 능력보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집착력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와이즈만 영재교육연구소 박성미 책임연구원은 “지능이 뛰어나도 문제 해결 도중 부딪치는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과제 집착력이 없다면 영재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건국대 수학교육과 홍진곤 교수도 “수학이나 과학을 잘하는 것은 과제집착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아이의 관심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것에 몰두할 수 있게 아낌없는 칭찬을 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제집착력을 키워주기 위해서는 수학적 개념이나 원리를 아이 스스로 터득하도록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문제를 많이, 빨리 푸는 것보다 한 문제라도 스스로 푸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 알고 있는 공식이나 원리를 적용할 수 있는 문제를 풀어야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JEI재능교육 정순남 수학팀장은 “복잡한 미로 찾기와 같은 문제는 과제집착력을 키워주는데 효과적”이라며 “다양한 수학적 활동이나 예시를 적극 활용해 흥미를 갖게 해주라”고 덧붙였다.

[사진설명]과제집착력이 뛰어난 과학영재 소윤아(왼쪽)양과 김도연군이 수학교구를 활용해 문제를 풀어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 송보명 기자 sweetycarol@joongang.co.kr / 사진=김진원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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