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가는 세월도 못뚫는'철벽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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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불혹(惑)이라는 마흔.

스포츠에서는 벌써 환갑이 넘어 은퇴를

하고도 남을 때지만 마흔을 바라보면서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노장의 기백'을

보여줄 두명의 골키퍼가 있다.

◇데이비드 시먼(잉글랜드·39)

2001년 9월 2일(한국시간) 독일 뮌헨에서 벌어진 독일과 잉글랜드의 월드컵 지역예선전. 5승1무로 기세가 오른 독일이 3승1무1패의 잉글랜드를 누르리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잉글랜드의 5-1 대승이었다.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해트트릭을 기록한 마이클 오언을 '잉글랜드 수호성인'로 떠받들었지만 '전차군단' 독일의 슈팅을 막아낸 골키퍼 데이비드 시먼이 없었더라면 기적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1988년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평가전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선보인 시먼은 '유로 96' 스코틀랜드·스페인전에서 페널티킥을 연달아 막아내며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동작이 민첩한 편은 아니지만 풍부한 실전경험으로 공의 방향을 예상하는 데 도가 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잉글랜드 축구팬들은 '넘버 1 골키퍼'라는 별명 앞에 정관사 'The'를 붙여 부르기 좋아한다.

"언젠가 같은 팀 선수가 자기 아버지 이야기를 하더군요. 듣다보니 그 선수의 아버지가 내 또래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 적이 있습니다."

잉글랜드 스벤 고란 에릭손 감독은 시먼이 잔부상에 시달린 데다 젊은 선수 위주로 팀을 꾸린다는 방침에 따라 처음에는 그를 대표팀에 소집하지 않았다. 그러나 곧 듬직한 팀의 중심이 필요하다고 느꼈고 그 대상이 바로 시먼이었다.

시먼은 "이번 월드컵은 물론 다음 월드컵에도 출전할 자신이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호세 루이스 칠라베르트(파라과이·37)

칠라베르트의 플레이는 한마디로 '북 치고 장구 치는' 스타일이다. 그는 활동범위가 넓은 골키퍼일 뿐 아니라 A매치에서만 6골을 넣은 '골 넣는 골키퍼'로도 유명하다. 매일 1백20회 이상 프리킥 연습을 거르지 않아 페널티킥은 물론 50m가 넘는 장거리 프리킥에도 능해 전문키커로도 손색없다. 지난해 프랑스 FA컵 결승전에서는 신들린 듯한 선방과 승부차기로 소속팀 스트라스부르를 우승시켰다.

칠라베르트는 골키퍼·키커로서뿐 아니라 플랫백 수비에서 최종 스위퍼 역할도 적절히 해내는 '멀티플 플레이어'다. 또한 파라과이 대표팀의 맏형은 물론 '야전사령관' 역할도 맡고 있다.

그의 카리스마에는 신기(神氣)가 다분히 있다. 팀 동료가 골을 넣으면 반대편 골대에서 그물이 찢어져라 매달리는 '세리머니'는 관중의 아드레날린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군부 실력자가 대표팀에 대해 왈가왈부할 때마다 출전 거부·항의 성명도 서슴지 않았고 월드컵 이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겠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다.

가끔씩 터져나오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지난해 브라질과의 월드컵 예선에서 브라질 카를로스의 얼굴에 침을 뱉어 4게임 출전정지 징계를 받았다. 따라서 월드컵 B조 리그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스페인전에 나설 수 없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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