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 체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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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어른들이 쉽게 던지는 이런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는 아이는 드물다. 다소 허황된 이야기를 하거나 얼버무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진로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전문가들은 “진로 교육은 막연하게 머리로 그려보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체험해보는 게 가장 좋다”고 입을 모은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에서 평소 쉽게 접해보기 힘든 미술관 속 직업 체험을 해봤다.

작가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 드러나야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들은 위치와 조명까지 철저한 계산에 의해 자리잡고 있다. 미술품 전시 기획부터 작품 선정, 배치와 관람 동선까지 총괄하는 이가 바로 큐레이터다. 환기 미술관의 채영 학예연구원은 “미술관에 찾아온 관람객들에게 이 작가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가 드러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채 연구원은 큐레이터 체험에 나선 임채원·조혜수(서울 목은중1)양에게 화가 김환기(1913~1974)의 생애와 작품에 대해 설명했다. “김환기씨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동양적인 필체로 한국의 달 항아리나 까치등의 민족적인 소재를 아름답게 그려내 세계의 주목을 받았죠.”

화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여러 그림들에 대한 설명까지 들은 뒤에 두 학생이 직접 ‘김환기 특별전’을 기획해봤다. 두 학생의 전시가 열릴 작은 공간에 김환기의 그림 모형 30여점을 쌓아두고 전시 작품도 직접 고르게 했다. 직접 선정한 그림을 벽에 걸기 위해 못질도 직접했다.

임양은 전시회의 이름을 ‘김환기, 그 처음과 끝’으로 정했다 “제작 연대에 따라 대표작을 선정했고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세상을 떠난 그의 정신을 본받게 하고 싶어서”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공간을 창조하는 직업, 건축가

환기미술관은 좁고 경사진 땅에 위치해있다. 이곳을 입체적으로 활용해 아늑한 전시실로 꾸며내 건축 전공자들이 건물을 관람하러 오는 명소가 됐다. 박정은 학예연구원은 건축가 체험에 나선 팽진서·임승빈(서울 서정초3) 군에게 “건축가는 자신이 지을 건물에서 생활하는 사람과 배치될 작품을 가장 편안하고 돋보이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미술관 건물은 미술 작품을 담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와 조명은 물론이고 작품이 손상되지 않도록 통풍과 환기까지 세심하게 신경써야 한다.

박 연구원의 설명을 들으며 미술관 곳곳을 견학해본 팽군은 “계단을 오르면 작은 의자가 있고 벽이 있는 곳에는 창문을 뚫어 빛을 들어오게 해 사람들을 배려했다는게 신기하고 인상깊다”고 말했다. 공간을 활용한 미술 작품도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프랑스의 작가 펠리체 바리니가 건축 공간 안에 빛과 그림자를 활용해 기하학적인 도형과 점·선·면을 그려넣은 작품이 아이들의 눈길을 끌었다.

박 연구원은 두 학생들과 바리니의 작품을 모방해 직접 미술 활동도 했다. 3차원의 공간을 설치하고 빛을 쏘아 만들어지는 그림자에 색 테이프를 붙여본 것이다. 관찰자의 시점이 맞는 장소에서 감상을 하게 되면 색 테이프가 하나의 모양으로 완성돼 입체로 보이게 된다. 임군은 “건축가의 상상력이 공간을 바꿀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며 “건축가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고 주변 건물들도 잘 관찰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사진설명]채영 학예연구원(가운데)이 건축가 체험에 나선 팽진서·임승빈(왼쪽부터)군에게 환기미술관 속 여러 건축 구조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 사진=황정옥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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