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파업 10분전 파국 모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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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발전노조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한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의 총파업이 2일 예정 시간을 10여분 앞두고 극적으로 철회됐다.

이에 따라 이날 전국 대부분의 사업장은 정상 조업했으며 조퇴투쟁을 앞두고 있던 교단도 평정을 되찾았다. 대다수 시민은 "협상을 통해 타협이 이뤄져 다행"이라는 반응이었다.

합의안에 한때 반발했던 발전노조원들은 이날 밤 조합원 긴급총회에서 3일 오전 9시부터 사업장에 복귀하기로 결정, 37일간의 파업에 마침표를 찍었다.

◇농성장=명동성당에서 농성을 해온 발전노조원 60여명은 2일 오후 1시쯤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 "마침내 가족 품에 돌아가게 됐다"며 기뻐했다.

그러나 합의서의 구체적인 내용이 알려지면서 분위기는 돌변했다. 민영화 문제를 교섭대상에서 제외한 것과 조합원의 민·형사상 책임에 대한 정부측 입장이 모호하다는 것을 문제삼고 합의안에 반발하고 나선 것.

일부 조합원들은 합의문을 '항복문서'라고까지 표현하며 "우리가 왜 파업을 했는지 모르겠다" "조합원의 신변 안전도 보장해주지 못하는 이번 합의안은 무효"라고 말했다.

그러자 노·정 협상을 담당한 민주노총측이 발전노조원 달래기에 나섰다. 이호동 위원장을 비롯한 발전노조원 1천2백여명은 이날 오후 10시 명동성당 앞에서 총회를 열어 격론 끝에 파업 종료를 선언했다.

◇발전소=파업 철회 소식이 전해진 2일 오후 충남 당진군 석문면 당진화력발전소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발전소 정상화 방안과 파업 후유증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나 집행부의 복귀 명령이 현장에 내려오지 않아 노조원들의 업무복귀는 거의 없었다. 전경들도 발전소 정문과 시설물을 지키는 등 긴장감은 여전했다.

이 발전소 관계자는 "노조원들이 복귀해도 장기간의 업무 공백으로 정상화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라며 "복귀한 노조원들과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직원들 사이의 감정 정리도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협상=1일 오후 7시 시작된 노·정 협상은 네 차례의 결렬을 거듭한 진통의 연속이었다. 2일 오전 9시 민주노총측이 "노사는 중노위 중재 재정을 존중하며 발전소 매각 문제를 논의 대상에서 제외한다"라는 수정안을 제시했다. 노동부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한 셈이었다. 이때부터 협상은 급류를 탔다.

총파업 전날 밤 재개된 협상은 이렇게 해서 3개 항의 합의사항을 담은 합의문을 만들어냈다.

◇반응=한국경영자총협회는 "민주노총의 합리적인 판단으로 사태가 원만하게 수습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이번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앞으로 노사협상에서 교섭사항이 아닌 문제로 불필요한 분규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경희 전교조 대변인은 "민주노총과 정부가 나서 파국을 피하게 됐다"면서 "조퇴투쟁을 철회하고 정상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라고 조합원들에게 지침을 내렸다"고 말했다.

학교사랑 부모모임의 고진광씨는 "학습권을 볼모로 하는 조퇴투쟁이라는 파행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이번 협상 과정과 결과가 앞으로 새로운 노사문화를 정착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손민호·남궁욱·김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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