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법에 상고심 재판부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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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판례 변경 등이 필요없는 대부분의 사건은 전국 5개 고등법원에 설치되는 상고부(상고심 재판부)에서 상고심(3심) 재판을 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산하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는 15일 "고법에 상고부를 설치하는 방안을 다수안으로 채택했다"면서 "이는 대법원이 중요한 사건에 대한 재판을 통해 규범적 가치.기준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개위는 또 대한변협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고법에 상고부를 설치하지 않고 현행 14명의 대법관 수를 20여명선으로 늘리는 방안을 소수안으로 제시했다.

사개위에 따르면 부장판사 3명으로 구성되는 상고부는 각 지역의 고법에 1~3개 정도 만들어지며, 현재 대법원에 접수되는 사건의 90% 가량을 처리토록 한다는 것이다.

상고부는 사건 당사자들이 다툼을 벌이는 소송액수가 일정 기준 미만인 민사.특별(세금소송 등)사건이나 일정 형량 미만의 선고가 이뤄진 형사사건 등을 주로 재판하게 된다.

사개위 관계자는 "고법 상고부가 다루는 사건의 기준은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구체적인 시행 방법 등은 내년 초 대통령 산하에 설치되는 사법개혁 추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된다"고 말했다. 사개위 측은 이르면 2007년부터 이 제도가 시행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판례를 변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엔 고법 상고부는 관련 사건을 대법원으로 보내 처리토록 할 계획이다.

또 사건 당사자가 고법 상고부 판결에 대해 판례 위반 등의 이유를 들어 다시 재판하기를 희망할 경우엔 대법원에 다시 상고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상고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는 일부 사건의 경우 사실상 '4심제'를 한다는 것이어서 향후 논란이 예상된다.

하재식 기자

[뉴스분석] 대법원 기능 살리려 '묻지마 상고' 고등법원으로 넘겨

그동안 사개위 내부에서는 대법원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고법에 상고부를 설치하느냐▶대법관 수를 늘리느냐 등 두 가지 방안을 놓고 의견이 엇갈렸었다. 사개위에 참석한 대법원 관계자들은 고등법원에 상고부를 설치하자고 한 반면 대한변협.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은 대법관 구성이 지금보다 다양해져야 한다는 이유로 대법관 숫자를 늘리자고 주장해 왔다. 이 같은 격론 끝에 결국 사개위는 국민이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재판을 받으려면 고법에 상고부를 설치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현재 대법원에는 대법관 14명이 있지만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제외한 나머지 12명이 매년 접수되는 상고사건 1만8000여건을 맡고 있다. 결국 대법관 한명이 한 해 동안 무려 1500여건의 사건을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대법관들이 사건 처리에 매달리다 보니 심도있는 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은 1000건당 한건도 안 되는 연간 10여건에 불과하다.

사개위 관계자는 "대법관을 몇 명 늘린다고 해서 현재처럼 모든 상고사건이 대법원으로 오는 한 대법관들의 과도한 업무량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일부에서는 단순히 소송액수.형량 등을 기준으로 중요도를 판단해 대법원에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불만도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이 무조건 3심까지 재판을 받으려고 하는 현실에서 고등법원의 상고부가 '상고를 위한 상고사건'을 맡아주고 대법원은 판례 변경 등이 필요한 사건들의 재판만을 전담하는 게 사법부가 국민에게 훨씬 좋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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