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코미디 영화 '승승장구' : 美 코미디영화 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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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의 코미디 영화를 이해하려면 할리우드를 참조해야 한다. 미국의 코미디 영화는 세가지 상이한 기원을 지닌다.

'모던 타임스' '시티 라이트' 의 찰리 채플린(사진)은 대중의 스타였으나 보수적인 당시 미국 사회와는 불화(不和)한 불운아였다. '제너럴'의 버스터 키튼은 스크린에서 결코 웃음을 보이지 않는 배우로 유명했다. 1920년대와 30년대를 전성기로 하며 무성영화 시대의 대명사로 통한 이들은 슬랩스틱 코미디의 전형을 창조했다. 원래 슬랩스틱이란 코미디언이 무대서 휘두르는 끝이 갈라진 막대기를 일컫는다.

채플린과 키튼이 내심 경멸했으며 어떤 의미에서 가장 두려워한 것은 다름아닌 '소리'였다. 우스꽝스런 몸짓만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었던 초기 코미디언들에겐 유성영화가 공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채플린·키튼의 바통을 이어받은 막스 형제는 '코코넛' 등에서 광기어린 익살극으로 미국 사회의 엘리트들을 비웃으며 풍자 코미디의 경지를 개척했다.

30년대 이후 미국 코미디 영화는 일대 변신한다. '스크루볼' 코미디의 시대가 온 것. 스크루볼 코미디는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익숙한 장르인데 예컨대 최근 인기를 끄는 TV 드라마 한편을 보자. 시골에서 갓 상경한 여성과 도회적인 부잣집 남성이 있다. 이들은 서로 애정을 느끼고 있음에도 겉보기엔 앙숙지간이다. 만나면 싸우고 으르렁거리길 멈추지 않는다. 이것은 스크루 볼 코미디의 변형이라 할 만하다. 신분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빠진 남녀가 주로 '대화'를 통해 자잘한 재미를 끌어내고 끝내 사랑에 성공하는 이야기인 것이다.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이후 할리우드의 주류 장르가 된 스크루볼 코미디는 아직도 다양한 대중문화 영역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이외에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는 섹스 코미디·로맨틱 코미디·블랙 코미디 등의 곁가지 장르를 지닌다.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패럴리 형제는 성적인 농담을 스크린에 풀어놓아 악동 감독의 지위에 올랐다. 영원한 명작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의 노라 에프론 감독은 로맨틱 코미디가 사랑의 낭만뿐 아니라 현대 여성의 솔직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장르임을 보여준다. '애니 홀'의 우디 알렌 감독은 미국 지식인 사회를 풍자하면서 감독 자신을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자기 반영적인 코미디의 영역을 개척했다.

김의찬·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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