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론·아라파트는 '이·팔 운명 축소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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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극한으로 치닫는 이스라엘의 아라파트(上) 고사(枯死)작전은 지난해 3월 아리엘 샤론(下) 총리가 당선됐을 때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샤론 총리는 꼭 20년 전 야셰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를 맞고도 살려준 데 대한 회한(悔恨)을 지금까지 품어왔기 때문이다.

1982년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샤론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본부가 있던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침공을 지휘했고 이스라엘군 저격수가 PLO의장 아라파트를 향해 총구를 겨누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끝내 샤론은 저격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아라파트 제거가 일으킬 파문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2월 이스라엘 신문 마리프와의 인터뷰에서 "82년에 아라파트를 없애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며 본심을 드러냈다.

아라파트는 절치부심 끝에 망명지에서 PLO 조직을 재건했고 민족적 영웅이 돼 94년 팔레스타인 땅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중동의 불사조'(不死鳥)란 별명이 붙은 것은 가혹한 시련을 이겨낸 이력 때문이다.

올해 73세로 동갑인 두 사람은 각각 이스라엘 건국 운동과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의 주역으로 전쟁과 무장투쟁 속에 성장한 인물이다.

샤론 총리는 14세 때부터 이스라엘 독립을 위한 무장조직에 가담했고 2,3,4차 중동전쟁에 참전했다. 젊은 시절 건설사업을 해 거액의 재산을 모았던 아라파트도 있는 재산을 모두 바쳐가며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참여했다. 72년 뮌헨 올림픽 당시 이스라엘 선수단 테러 사건 등 각종 테러에 개입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처럼 개인의 삶 속에 민족 갈등의 역사를 그대로 새겨온 두 사람의 숙적 관계가 겹쳐 중동사태는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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