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주인 "제발 지어주세요" 건설사 "분양안돼 못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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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부동산 개발용 땅이 남아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택개발업체와 건설업체들은 아파트나 오피스텔 등을 지을 땅을 찾기 위해 눈에 불을 켰으나 지금은 개발 의뢰되는 땅을 거절하기에 바쁘다. 극심한 경기 침체와 규제 강화 등으로 분양 환경이 극도로 나빠지자 몸을 사리는 것이다. 이 때문에 땅이 있는 건축주와 시행업체들은 사업을 벌이지 못해 애를 태운다.

포스코건설에는 땅 도면을 들고 찾아오는 시행업체 관계자가 하루 5명이 넘는다. 회사 관계자는 "대부분 땅 계약금만 치러놓고 시공해 달라는 요청이지만 90% 이상은 거절한다"고 말했다. 포스코건설이 수주 대상에서 제외하는 프로젝트는 상가와 오피스텔, 지방 소도시의 아파트사업. 수도권이라도 소형 프로젝트 등이다. 오직 대도시나 택지지구의 아파트사업에만 관심을 가진다. 포스코의 또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땅이 없어 개발업자들을 찾으러 다닐 정도였는 데 지금은 상황이 급변했다"고 말했다.한라건설은 올해 1000여건의 사업의뢰가 접수됐다고 한다. 2002년보다 두 배 정도 늘었다. 실제 사업으로 이어진 것은 10건도 되지 않는다. 한라건설 배영한 상무는 "택지지구나 지방이라도 공급이 없었던 지역이라면 몰라도 웬만하면 프로젝트를 맡지 않으려 한다"고 말했다.

개발업체나 땅 주인들이 찾아오는 것은 잔금이나 공사비 대출을 하려면 대형 건설업체들의 보증이 필요하기 때문. 공사를 주는 조건으로 대출을 일으켜 잔금을 갚고 부동산 개발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요즘 금융권이 대출을 굉장히 까다롭게 운영하면서 브랜드 있는 업체들로 몰리게 돼 있다. 삼성생명 프로젝트 파이낸싱 담당자는 "신용등급이 트리플B를 얻은 업체까지 보증을 인정하나 실제로는 상위 5개 건설사 정도만 대출보증을 설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투자회사에도 땅 개발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리만브러더스 유성목 부장은 "지난해는 간간이 부동산 개발사업 요청이 있었으나 올해는 하루에 3~4건의 땅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개발업체에도 땅 주인이나 토지 브로커를 통해 접수되는 땅이 부쩍 늘었다. ㈜밀라트 강일룡 사장은 "부동산 경기가 좋을 때와 달리 요즘엔 하루 두 세 건의 땅을 개발사업용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성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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