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뮤직다이어리] 일본 밴드 '동경사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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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어느 시대에나 타고난 에너지와 재능, 풍부하고 굴곡 깊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요부'의 이미지를 얻는 여성들이 있다. 마릴린 먼로부터 마돈나에 이르는 계보가 그렇다. 이들은 주류 여성 아티스트들이 흔히 취하는 순응적인 자세를 거부하고 도발적인 언행과 한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반영하는 결과물로 대중을 선도한다.

현재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여성이 시나 링고다. 1998년 첫 앨범 '행복론'으로 스타덤에 오른 이래 지난해 '시멘트 정액 밤꽃'까지 세 장의 음반을 발표한 그는 작사 작곡은 물론 프로듀서와 공연 연출까지 직접해내는 재능의 소유자다. 누구보다 강한 일본 전통 음악적 색채를 갖고 있으면서도 재즈와 록, 펑크를 넘나들며 각 음악의 특성을 정확히 포착, 자신의 음악에 반영하는 직관과 소화력은 그에게 분명한 정체성을 안겨준다.

그런 그가 지난 여름 "혼자서 만드는 음악은 끝났다"며 당대의 세션맨들과 함께 밴드 '동경사변'을 결성했다. 이때만 해도 여느 잘나가는 솔로 가수들처럼 그가 밴드 내에서 압도적인 지분을 차지하는 모습을 예상했다. 하지만 빗나갔다. '동경사변'의 첫 앨범 '교육'에서 링고는 정확히 5분의 1만큼의 역할을 한다. 솔로 시절 엿볼 수 있던 '시나 링고표 음악'에 다른 색깔들을 덧입혀 새로운 색채를 만든 것이다. 넘치는 에너지와 날카로운 정교함이 공존하며 예측불허의 구성과 끊어지기 직전의 빨랫줄 같은 팽팽함이 함께한다. 이 모든 것이 튼튼한 동아줄처럼 한데 엮여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5명의 멤버는 모두 쟁쟁한 경력을 갖고 있지만 '동경사변'이라는 이름 아래서 갓 음악을 시작한 청년들처럼 활기에 넘친다. 관록의 정치인들이 모여 신당을 창당했을 때처럼. 하지만 이 '정당'이 현실 정치권의 그것처럼 곧 구태에 빠질 것 같지는 않다. 권력을 잡기 위해 모인 게 아니라, 음악 그 자체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는 순수한 의지를 앨범으로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의 일본음악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로 능히 꼽을만한, 밴드 음악의 힘을 보여주는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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