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코치] 아르헨티나전, 고지적응의 싸움이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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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코치

한국체대 스포츠의학 오재근 교수

일반적으로 축구는 고지적응 훈련이 흔하지 않은 종목이다. 2002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프랑스대표팀이 4일간 해발 2700m의 알프스 고지대인 티그네에서 훈련에 돌입한 적이 있었다. 이미 프랑스는 98년 월드컵과 2000유럽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같은 장소에서 고지대 훈련을 가진 바 있었다. 우리 올림픽축구대표팀도 2004년 이란전을 앞두고 일주일 동안 중국 쿤밍에서 고지적응훈련을 했었다.

하지만 고지적응의 메커니즘을 아는 운동생리학자들은 이를 두고 4일간의 휴가였거나 정신이완이나 고도체험 훈련이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고지적응훈련을 위한 기간이 적어도 3∼4주 정도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경기에서 가장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는 기간은 고지적응 훈련 기간 동안이 아니라 고지훈련 완료후 4∼21일 사이가 되어야 한다고 알려져 있어서 일주일 동안의 고지대 훈련만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나타내기 힘들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지라는 환경은 대기압이 낮고 이로 인해 공기 중에 산소의 분압이 낮아져 있는 상태이다. 이 때 체내에서는 혈액의 산소운반능력이 떨어지면서 저산소 상태가 유발된다. 이러한 저산소의 고지환경에 장기간 노출되면 인체는 산소운반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적응현상을 나타내게 된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감소된 산소압이 적혈구 수의 증가를 자극하여 혈액 중에 많이 생성하게 됨으로써 헤모글로빈과 혈소판을 증가시켜 유산소운동능력이 향상된다는 점이다.

오랫동안 고지에 머무르면 그렇게 되겠지만 고지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식욕부진, 두통, 메스꺼움, 나른함, 불면증, 피로 등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증상은 1,500m 정도의 낮은 고도에서는 일부에게, 3,000m 이상의 고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나타나는데 처음 24시간에서 48시간 사이에 가장 심하며, 그 후 점차 완화되어 6-8일이 되면 완전히 없어진다.

처음 고지에 적응할 때 선수는 충분한 휴식과 함께 물이나 우유 등의 수분섭취를 많이 하고 고탄수화물 저염분 식사를 해야 한다. 그 이유는 고지에서의 장시간 운동이 탈수로 인한 전해질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고 경기중 열량공급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대부분 근육경련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적은 양의 산소로 만들 수 있는 에너지는 탄수화물이 지방보다 더 높기 때문에 고탄수화물의 식사가 좋다. 고탄수화물 식사로 증가된 혈액의 산소운반능력은 고지에 노출된 초기에 고지에 대한 내성을 증가시키고 고산증의 증상을 완화하며 신체의 운동능력을 향상시켜 주는 작용을 한다. 운동은 훈련 초기에는 짧은 시간 동안 평소의 스피드 훈련을 반복하고 점차 시간과 강도를 늘려나갈 것을 권장하고 있다.

고지대에서의 경기는 저지대 국가 선수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최근 영국의학저널(BMJ)는 아르헨티나, 칠레, 우루과이, 파라과이, 브라질, 볼리비아, 페루, 에콰도르,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등 10개국이 1900년부터 2004년까지 치른 1460차례의 국가대항 맞대결 기록을 토대로 ‘고지대와 체육경기 분석’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고지대로 경기를 위해 원정 온 저지대 국가의 승률은 저지대의 홈 경기 때보다 최대 4배 정도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번 경기에서 남아공에 도착했을 때부터 계속해서 고지에 머물렀던 아르헨티나팀에 비해 고지대에서 저지대로 와서 경기를 하고 다시 고지대로 올라간 한국팀이 생리학적으로 다소 불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2주 이내의 기간이라 그 차이는 미미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한국팀은 출발하기 전부터 산소텐트 등 고지적응에 대한 여러 가지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고 보도되어 왔다.

공은 둥글다. 그리고 축구의 승패가 언제부터 단지 운동생리학적인 결과였던가. 어차피 체력도 정신력이다. 이번 아르헨티나전은 경기 결과는 그것을 말해 준 것이다.

한국체육대학교 스포츠의학 오재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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