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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 스님, 그는 다시 길을 떠난 것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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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수경은 모든 것을 다 내려놓는다고 했다. 그는 나에게 스승 스님의 말씀을 몇 번인가 했다. “대접받는 중질을 하려면 중질을 그만둬라.” 그런데 벌써 자기가 “대접받는 중”이 돼 버렸다고 탄식했다. 2년 전에는 “환계”를 하고 깊은 산에 들어 작은 밭을 일구며 이름 없는 초부로 남은 생을 살겠다고 땅을 보러 여러 군데를 다녔다. 나는 만류했다. “세상 일을 더 해야 한다. 사람 농사를 더 해야 한다. 불교를 개혁해라.” 그의 대답은 늘 군더더기가 없다. 세상사와 절집 일이 다르지 않다는 것, 종교가 특히 불교만이라도 제 몫을 하면 세상이 바르게 된다는 것, 삶과 죽음도 제대로 모르면서 자꾸 말을 많이 하게 돼 민망하다고 했다.

4대 강 사업에 대한 그의 생각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나와 너 그리고 뭇 생명, 더 나아가 무생물까지도 모든 유정과 무정은 하나라는 것이다. 동체 대비. 다른 생명 없이 나의 생명이 한순간인들 유지될 수 있을까? 그렇다고 수경이 4대 강을 그 누구 말처럼 “일절 손대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라”는 것은 아니다. 4대 강을 “제대로 살려 뭇 생명이 잘 살도록 하는 것”이 기본이 되기를 바란 것이다. 그래서 그는 4대 강 사업이 “제대로 살리기”가 되도록 이명박 정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경은 떠났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 그는 나에게 조용하게 말하고 있다. “당신은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사는가.” “무엇을 그렇게 많이 챙기려고 하는가?” 나는 수경의 낮은 목소리에 따를 자신이 없다. 바깥일에 매달리고 따지고 하는 것의 몇 분의 일이라도 “안을 들여다보라”는 지적에 수긍하면서도 자꾸만 남의 탓, 세상 탓, 미국 탓, 중국 탓… 하는 것이 나의 모습이다.

수경이 떠난 이튿날 몇 사람이 모여 얘기를 나눴다. “수경이 우리에게 남긴 짧은 글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그러니 그를 찾지 말자.” 그러면서도 모두 걱정했다. 지금 그의 건강 상태가 최악이라는 점이다. 무릎 연골이 닳아 없어졌고 쌓인 피로로 자연 면역력이 아주 약화되어 있는 그것 말이다. 수경은 말할 것이다. “길을 걷다가 죽으면 그처럼 다행도 없소. 중이 병원에서 죽는 것처럼 한심한 것도 없는 것이오.” 그래, 수경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다. 아주 크고 조용한 죽비를 들고서 말이다. “정신 차리세요. 함께 살 길을 찾읍시다”라며.

정성헌 DMZ 평화생명 동산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