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거대한 난민촌' 가자지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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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가자=이훈범 특파원]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가자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당나귀가 끄는 마차와 리무진 벤츠다. 서로 어울리지 않지만 둘다 주민의 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도심에서도 외곽에서도 당나귀들이 사람과 짐을 실은 달구지를 힘겹게 끌고 다닌다.

그래도 마차는 어엿한 '자가용'이다. 마차조차 없는 사람은 벤츠를 이용해야 한다. 말이 좋아 벤츠지 대부분 주행거리가 40만㎞를 넘은 폐차 직전의 고물이다. 중고 리무진을 들여와 7인승으로 개조한 벤츠는 승객당 1셰켈(약 3백원)씩 받고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마을버스 역할을 하고 있다.

"모든 것이 10년 전으로 돌아갔다.자동차가 있어도 기름값이 없어 굴리지 못한다. 하기야 차를 굴릴 필요도 없다. 할 일이 없으니까." 자동차 정비공장의 기술자 마제드 주데(44)의 말이다.

가자에 있다 보면 성한 건물보다 부서진 건물에 더 익숙해지게 된다. 경찰서·행정관청 등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와 관련있는 건물들은 남김없이 파괴됐다.관공서 주변 민간 건물들도 다수가 엉뚱한 피해를 보았다. 한 팔레스타인 경찰관은 "이스라엘 F-16 전폭기가 20여일 동안이나 미사일을 퍼부은 탓"이라고 말했다.

팔레스타인 민병대의 공격이나 자살테러로 이스라엘이 당할 때마다 보복의 주요 표적은 가자지구였다. 그렇다고 밖으로 나갈 수도 없다. 가자는 외부로의 차량출입이 완전히 통제돼 있다. 인티파다 이후에는 보행자들의 통행도 자유롭지 못하다. 가자 밖에 직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은 대부분 일자리를 잃었다. 오슬로 협정 이후 야심차게 시작됐던 가자 항구 공사도 중단됐다. 백사장을 끼고 줄지어 선 호텔들은 1년이 넘도록 개점휴업 상태다.

생기를 잃은 가자지구에서 유일한 '오아시스'는 유대인 정착촌 네자림이었다. 적진 한복판에 당당하게 침투해 건설된 네자림은 역설적으로 정착촌 중 가장 안전한 곳이다.

사방이 나무숲으로 둘러싸였고 높은 망루에서 이스라엘 병사들이 팔레스타인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다.1㎞나 떨어진 거리에서 살펴 보려는데 택시기사 자히드(52)가 "빨리 차에 오르라"고 성화였다."군인처럼 보이면 무조건 쏘기 때문에 10m 거리도 차로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판자촌 같은 가자의 아랍인 주거지역과 달리 네자림은 네모반듯한 계획도시다. 주민들은 유대인 전용도로로 외부출입도 할 수 있다.가자의 부서진 건물들 사이에서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돌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지금대로라면 아이들 중 몇몇은 커서 돌 대신 폭탄을 손에 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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