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남유럽 복지국가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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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그리스는 결코 따라가서는 안 되는 길이다.” 서로 다른 전공의 학자 세 명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복지모델을 두고 한 얘기다. 문우식 서울대(경제학) 교수, 이재열 서울대(사회학) 교수, 김연명 중앙대(사회복지학) 교수는 15일 오후 7시 서울 반포동의 한 한식당에 모여 ‘남유럽 재정위기 이후 복지국가는 지속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남유럽 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우리나라 복지모델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좌담회는 중앙일보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공동 기획했다.

15일 서울 반포동에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중앙일보가 공동 기획한 좌담회에 앞서 참석자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연명 중앙대 교수,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 이재열 서울대 교수, 문우식 서울대 교수. [김성룡 기자]

▶김용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사회)=남유럽 재정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며 사회복지와는 어떤 연관성이 있나.

▶이재열=남유럽 국가들에서는 정치적 지지와 경제적 혜택을 교환하는 야합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법을 알면서도 이행을 못 하는 한계가 있다.

▶김연명=남유럽의 대표적인 문제가 클라이언텔리즘이다. 선거 때 조직화된 노동자에게 집권 후 혜택을 몰아주는 복지정책을 쓴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공공지출이 증가하게 된다. 이런 구조에선 경제에 충격이 왔을 때 문제가 가중된다.

▶사회=재정지출을 줄이면 직격탄을 맞는 곳이 복지분야다. 어떻게 전망하나.

▶문우식=재정지출을 줄일 게 아니라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 유로화 가치가 떨어지면 성장을 통한 위기극복이 가능하리라 본다. 문제는 유럽 간의 환율 조정이다. 이걸 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임금 삭감뿐이다. 임금을 줄이면 재정에서 복지지출을 줄이지 않고도 적자를 줄일 수 있다.

▶김연명=그리스의 경우 복지지출 중 절반이 연금으로 나간다. 고령 인구에 나가는 지출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높다. 과다 지출되는 부분에 대한 조정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회=북유럽이나 영미 국가에선 이런 문제가 없나.

▶문우식=일반적으로 복지지출의 비율과 경제성과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북유럽은 경제성과가 좋지만 복지지출도 다른 국가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이재열=북유럽은 산업경쟁력을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투명성 부문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 구조조정의 상황에서 이러한 개혁에 따른 고통을 국민이 감수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 장기적으로 그 혜택이 나에게 돌아올 것으로 생각하는 선순환 효과가 만들어진 것이다.

▶사회=우리나라는 경제위기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났고 펀더멘털(경제 기초여건)도 괜찮다. 그러나 한편으론 고령화 등의 위험요소가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복지개혁은 어떻게 이뤄져야 하나.

▶김연명=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면 가장 직접적인 비용 부담이 느는 곳이 연금과 의료보장이다. 노인의 대량 빈곤을 고려하면 연금지출을 줄일 수는 없다. 단 의료보장에선 개혁이 필요하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의료비를 쓸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문우식=우리나라처럼 동질화된 사회는 유럽식 복지모델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복지로 인한 지출이 성장을 저해하지 않기 위해서는 노동시장을 탄력적으로 만들어 실업률을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

▶김연명=성장동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무조건 복지만 늘리라고 주문하는 것은 무책임하다. 하지만 시장 메커니즘에서 제외됐을 때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체계는 갖춰져야 한다. 이와 함께 성장 친화적인 복지도 고민해야 한다. 유럽연합의 리스본 조약처럼 우리도 노동력의 질을 높이고 공급량을 늘리는 정책이 필요하다.

▶사회=균형 재정으로 가는 게 정부의 목표다. 그런데 지금의 복지제도를 유지하는 데만도 1조5000억원이 추가로 든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문우식=우선 정부의 지출을 줄여야 한다. 공공분야가 크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이 커진다. 복지분야에서도 기업이 할 수 있는 부분은 기업이 대체해야 한다.

▶이재열=정부가 재정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를 잘 따져봐야 한다. 효과에 대한 검증 없이 전시성 복지가 너무 많다. 소수의 선택된 대상자에게 모든 혜택이 집중되는 것도 문제다. 장기적으로 사회에 닥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투자해 사후 리스크를 줄이고 노동력을 향상시켜 성장에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김연명=의료 부문의 비효율성을 개선해야 한다. 치료를 예방으로 바꾸고 과잉 진료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데서 효율적으로 운영한 돈을 복지 인프라를 확충하는 데 써야 한다.

▶사회=균형 재정을 유지하면서도 복지 수준을 향상하기 위한 과제는.

▶이재열=단순히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율을 따질 게 아니라 지출의 콘텐트를 개선해야 한다. 그리스의 경우는 조직화된 집단에 복지가 과잉으로 공급돼 심각한 모럴 해저드를 낳았다. 이렇게 방만한 부분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적인 합의를 도출해 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우식=유럽의 경우를 보면 규제가 특정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고 그 결과 경쟁력을 잃게 됐다. 복지분야에서의 규제를 완화해 시장이 자발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

글=김경진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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