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키우는 즐거움" 교사 시인의 감동교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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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사'자 붙은 직업 얘기를 먼저 해야겠다. 의사·변호사·판사 이 세 직종은 직업 선호도에서 1순위를 다투지만 한자로 '사'자는 영 딴판이다. 우선 판사(判事) ·검사(檢事)는 일을 많이 하라고 일 사(事)자가 붙는다. 교회의 집사(執事)도 마찬가지. 다음으로 변호사(辯護士)는 선비 사(士)니 깊은 전문성과 기교를 요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의사는? 알다시피 스승 사(師)가 붙는데 이발사(髮師), 미용사(美容師), 요리사(理師), 그리고 교사(敎師)도 같은 부류다. 이들에게 스승의 호칭을 주는 이유를 저자는 "인간의 정신이나 육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일을 하기 때문"(2백5쪽)이라 해석한다.

물론 저자는 의사가 아니라 교사며 『시골 사람, 시골 선생님』은 지난 38년간 시골에서만 초등학생을 가르쳐온 선생님이자 시인의 산문집이다. 책은 교직과 관련해 만만치 않은 울림과 사유의 두께, 그리고 솔직담백한 삶과 글의 참맛을 선사한다.

그것은 제목이 '시골 사람'이라 향토적 서정만 그릴 것 같지만 오히려 가르침의 본질과 인간됨의 원형에 관해 묻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도시인들은 시골 혹은 전원에서 여유와 낭만을 떠올린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마음의 재배열이다. 자연적 삶이란 "꽉 찬 것보다 적당히 빈 것을 더 아름답게 볼 줄 아는 태도"(1백91쪽)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예컨대 휴대폰이 없어도, 자가용을 소유하지 않아도 세상과 교통하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 저자의 모습을 보자. 그에 반해 대개의 현대인들은 엄청난 재앙을 초래하거나 고작 조그만 편리성을 줄 뿐인 기술에 열광한다.

이전엔 욕망의 대상조차 되지 못한 '편리함'인데도, 넘치는 정보 속에 압살당하고 몰라도 좋았을 것을 알려고 발버둥친다. 통신과 교통기술의 발달로 일어난 시공간의 압축 현상이 삶의 지평을 넓히는 게 아니라 쳇바퀴같은 삶의 회전속도만 높이고 있을 뿐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제가 마땅히 지켜야 할 자리가 어디인지 몰라서 서성이는 군상들"인 것이다.

반면에 저자는 시골에 있으면서도 우주를 사유한다. 아니 우주적으로 행동한다. 코흘리개 아이들의 "천진스러움, 대책없음, 꾸밈없음"을 지극히 사랑하는 저자이지만 그 아이들도 때로 힘들고, 외롭고, 절망한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한 영혼의 성장을 목격하는 것이며 서로 영향받고 의지하고 돕는 것이니 이것만큼 위대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통화율 최고라는 어느 휴대폰도 정신적 통화성공률 면에선 시인 선생님과 아이들을 따라오지 못한다.

삶에 대한 이런 명확한 태도를 밑거름으로 써 낸 저자의 교육론·교사론은 따라서 현직 교사뿐 아니라 부모 자식, 친구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한번쯤 숙고해 봐야 할 내용이다. "교원에게 강하게 요구되는 것은 염결성(潔性)과 자기 갱신력"(2백8쪽)이며 "특히 초등학교 교사는 작은 것, 초라한 것, 약한 것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1백16쪽)

책은 물론 아이들 얘기를 위시해 교사 생활의 여러 에피소드들로 구성돼 있으니 그 자체로 읽는 맛이 있다. 선생님 '찌찌'를 만지고 좋아하던 아이, 어린 시절 바람피는 아버지에 절망해 엄마가 자살했던 한 제자 얘기, 그리고 성년이 돼 만난 그 제자가 또 다시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신산스런 삶을 산다는 대목은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나태주씨는 현대불교문학상·박용래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인이며 현재 충남 공주의 상서초등학교 교장이다.

우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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