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합병 대세… 협상은 주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세계적인 증권회사인 메릴린치는 19일 국민은행의 시장 과점에 대항하고, 공적자금 투입은행을 민영화하며, 금융 겸업화 추세에 따르기 위해선 국내 은행간 합병이 불가피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메릴린치는 특히 여러 합병 후보 중 어느 한 곳의 합병이 성사되면 나머지도 따라서 합병 열풍이 불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물밑에서 진행 중인 합병 작업들은 여전히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암초에 걸린 하나·제일=두 은행의 합병 작업은 기본 원칙에 합의하고 가치평가 작업에 들어갈 정도로 급진전돼 왔다.

그러나 최근 가격 문제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결렬 위기를 맞고 있다.

제일은행측은 "합병이 어렵다는 점이 이사회에까지 공식 보고된 이상 합병 쪽으로 다시 급선회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이다.

다만 아직 꺼진 불로 볼 수는 없다는 분석도 있다. 지분 분산 요건을 맞추지 못해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제일은행이 최근 증권거래소에 상장폐지 유예요청을 했기 때문이다.

두 은행은 최근까지 진행한 합병 협상에서 법인세 감면 효과를 얻기 위해 존속법인은 제일은행으로 하되, 상장은 유지한다는 데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한미 합병 가능성 커져=메릴린치사의 보고서에서 합병 가능성이 가장 큰 조합으로 꼽혔다. 두 은행이 합칠 경우 얻을 시너지 효과도 제일 높게 나타났다.

하지만 주식교환 비율, 경영진 구성 등에 대한 이견을 좁히는 데 진통을 겪고 있다.

경영진 구성과 관련해 신한측은 한미은행의 일부 경영진은 합병은행에 합류하되 나머지 임원은 대주주가 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신한측은 제주은행·한미은행을 인수할 여력은 있으나 서울은행까지 떠안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대우증권 인수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다"고 일축했다.

◇서울은행은 어떻게=정부는 여전히 '우량 은행에 합치는' 방안을 1순위로 꼽고 있다. 하지만 우량 은행간 합병작업이 지체되고 당사자들이 서울은행 인수를 꺼리면서 기업 컨소시엄에 넘기는 방안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동부그룹 계열사들이 분식회계 혐의로 금감원에 적발되면서 최근 인수를 다시 선언한 동원그룹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특정 기업에 은행을 넘기는데 따른 특혜시비가 우려되는 데다 자금력에 대한 검증도 어려워 정부가 기업 컨소시엄에 넘길 결심을 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흥과 외환은행도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지만 정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은행 매각은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최현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