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잃고… 이사 가고… 정신과 치료 1 차 공개자 죄값 톡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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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청소년 대상 성범죄자 1백69명의 신상이 공개된 후 본인은 물론 가족들까지 극심한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는 직장을 잃었으며, 망신을 당하고 이사를 떠나거나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례도 적지 않게 확인됐다.

여아들을 강제 추행한 사실이 공개된 컴퓨터학원장 L씨는 "학원은 물론 집도 다른 동네로 옮겼다"면서 "신경 불안과 대인공포증에 시달려 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으며 지금도 신경안정제 없이는 잠을 못 이룬다"고 말했다.

또 다른 L씨는 "주소가 군(郡)까지만 공개됐으나 작은 마을이어서 이웃들이 다 알게 됐다"며 "자식들까지 직장을 못 구하는 등 가족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고 하소연했다.

K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전화번호도 바꿨지만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집안 불화가 계속돼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죄 없는 가족들까지 상처를 입힌 내 죄도 크지만 이런 식의 신상공개 제도는 달라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신원이 공개된 뒤에도 또다시 같은 범죄를 저질러 붙잡힌 사람도 셋이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청소년보호위 관계자는 "이들의 재범 여부를 사법 당국을 통해 조사한 결과 지난달까지 3명이 다시 강간·강제추행·성매매 알선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신원 공개자들이 대체로 성범죄 성향이 강한 사람들인 만큼 생활 변화 등을 상시 추적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이승희 위원장은 "올해 안에 신상 공개자들에 대한 실태 조사를 거쳐 개선안을 마련할 방침"이라며 "재발 방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해당 자치단체나 경찰서에 알려 감시하게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박현영·윤혜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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