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뺀 한화갑…'李·盧 혈전'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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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화갑(韓和甲)고문이 19일 대선 후보 경선을 포기함으로써 중반으로 접어든 민주당 경선이 새 국면을 맞게 됐다.

처음 일곱명이던 후보는 김근태 고문과 유종근(柳鍾根)전북지사에 이어 韓고문이 중도 사퇴함으로써 4자 대결로 압축됐다. 일등 자리를 놓고 이인제(李仁濟)-노무현(盧武鉉)후보가 치열한 각축을 벌이는 양강(兩强)구도가 더욱 굳어졌다. 그만큼 경선은 사활을 건 대 혼전(混戰)으로 치달을 전망이다.

당장의 관심은 韓고문이 어느 후보의 손을 들어줄 것이냐다. 경선 3위를 기록 중이던 韓고문의 향배는 중요한 변수다.

李·盧후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팽팽한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데다 후보 수가 줄어들면서 선호투표제까지 가지 않고도 과반 득표를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고위 당직자는 "韓고문이 지지해 주는 쪽이 승기를 잡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韓고문은 단단한 조직을 꾸려 왔고, 이를 바탕으로 2000년 최고위원 경선 때 1위 득표하는 저력을 보이기도 했다.

盧후보측은 "동교동계가 盧후보와 결합하게 된다면 盧후보의 취약점인 조직표를 보완할 수 있다"며 기대를 감추지 않고 있다. 韓고문이 노무현·김근태·정동영(鄭東泳)후보 등과 함께 당내에서 '범(汎)개혁 그룹'으로 꼽혀 왔다는 점도 盧후보의 기대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盧후보 캠프의 유종필(柳鍾珌)특보는 "한심노심(韓心盧心)"이라며 韓고문과 盧후보의 생각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李후보측 핵심 참모는 "韓고문이 후보로 뛸 때는 동교동계 조직표가 양분돼 李후보에게 불리했지만, 이제는 정통 지지표들이 李후보 쪽에 붙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대보다 경계심이 더 커 보인다. 李후보의 한 측근은 "정계 개편과 '영남 후보' 선출을 위한 물밑 연대가 사실상 마무리된 것 아니냐"며 "韓고문이 백의종군을 선언한 것은 묵시적인 노무현 지지일 수도 있다"고 의구심을 보였다. 더구나 李후보측은 韓고문의 사퇴 소식을 잘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韓고문의 사퇴로 호남표가 결집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오랫동안의 인연으로 韓고문을 외면할 수 없었던 지구당위원장이나 구(舊)당료·대의원들이 보다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에도 일단 盧후보가 유리하다는 게 일반적 분석이다.

향후 동교동계의 거취도 관심이다. 권노갑(權魯甲)전 고문이 이끄는 구파(舊派)와 韓고문을 중심으로 한 신파(新派)는 韓고문의 대선 출마를 놓고 갈라섰다.

韓고문의 사퇴로 갈등 요인이 해소된 만큼 직·간접적으로 화해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성공하든 결렬하든 민주당 경선에 미치는 영향은 작지 않을 전망이다.

주목할 부분은 당 일각에서 韓고문의 경선 포기에 대해 "승산이 없다고 판단한 쪽에서 불공정 경선 시비의 한 예로 꼽으면서 후보 사퇴나 탈당의 빌미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韓고문은 김대중 대통령과의 관계 등으로 미뤄 사퇴 후에도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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