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주택이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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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0면

기능을 중시하면서 단순한 기하학적인 외관을 가진 주택들이 늘어나고 있다.

20세기 초반의 기하학적인 모더니즘이나 철저히 장식을 배제한 미니멀리즘이 21세기 초반에 다시 살아나는 셈이다.

간결한 평면구조와 박스를 쌓은 듯한 주택 외관 못지 않게 실내도 흑백의 단순한 형태와 최소한의 장식 등으로 모더니즘에 충실하다. 새로 재현되는 모더니즘 주택의 특징은 거주자의 요구를 충실히 반영하면서 건축형태를 검소하고 단순하게 풀어내는 점이다.

한국예술종합대학 김봉렬 교수는 "문화적이고 세련된 감각을 원하는 계층이 늘어나면서 추상적이고 미니멀한 집들이 늘어나는 경향"이라고 설명했다.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에 지어진 주택 '시퀀스'와 경기도 일산의 '맴돌집'도 가족들의 생활패턴을 적절하게 담아내면서 단순한 외관을 가진 이런 건축 경향의 독특한 사례들이다.

아천동 주택 '시퀀스'는 그 지역의 건축 규제 때문에 한 채를 크게 짓기 어려워 연못을 사이에 두고 본채·별채를 일자형으로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집 이름인 '연속성'을 이루어낸 셈.

설계를 맡은 서인건축 최동규 소장은 "최소한의 면적도 허비하지 않으려는 치열한 노력을 간결한 평면으로 귀결시켰다"고 설명했다

평면 못지 않게 입면(面)도 단순하기 그지없다. 어떻게 보면 그저 어긋나는 상자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일 정도다. 노출 콘크리트와 육면체의 건물 모습이 극히 현대적이지만, 깔린 듯한 입면은 야트막한 뒷산과 전혀 이질감 없이 조화되고 있다. 단순하고 간결할수록 자연과의 조화가 오히려 쉽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연세대 건축학과 민선주 교수가 설계한 일산의 '맴돌집'은 그 집에 살 가족들이 원하는 세밀한 사항까지를 모두 반영한 주택이다.

필로티(기둥)를 세워 건물을 위로 올려 마당 공간을 최대한으로 확보했다. 어린아이들이 뛰어놀기 위한 공간이다.

외관은 철골조로 단순하게 처리했고, 아이들이 오르내리기 위한 경사 램프의 설치나 가족들이 모두 같은 방에서 잘 수 있도록 배려한 단순한 평면이 특징이다.

민교수는 "아이들이 어린 집인 만큼 모든 것이 채워진 것이 아니라 비워두어서 앞으로 채워나갈 수 있는 공간으로 계획했다"고 말했다. 즉 가족들이 그려나갈 빈 도화지를 마련하는 것을 주택 설계의 주안점으로 삼았다는 설명이다. 가진 것을 과시하지 않는 단순하고 검소한 형태의 주택들이 오히려 문화적 차원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어느 만큼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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